[김종환의 해피 하우스] 조(Joe)의 이야기
입력 2013-05-31 17:58
요즘 학교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이 피해자의 고통이기 때문에 가해자를 사람 만드는 일에 관한 언급은 드물지만, 가해자의 부모와의 상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를 만난 가해자의 부모는 그저 울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들에 관한 절망감, 자식을 잘못 키운 죄책감으로 울고 또 울었다. 한동안 울고 난 후에야 겨우 “기도 많이 하고 있지만…너무 답답하여 왔노라”고 했다. 이럴 때 나는 상담학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조(Joe)의 이야기를 꼭 들려준다.
미국 밀워키라는 곳에 12세 때 잔인한 행동으로 학교에서 추방된 ‘조’라는 소년이 있었다. 퇴학당한 화풀이로 포악해진 그는 아버지 집과 농장에 불을 질렀다. 속수무책인 아버지는 경찰의 도움으로 그를 교정시설에 보내게 된다. 그는 더욱 포악해져서 대부분 독방에 갇혔다고 한다. 그 후에 조의 수감생활은 20대 중반이 되도록 반복되었다. 또다시 그가 형량을 마치고 마을로 다시 돌아왔으나 또 물건을 훔쳤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때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매우 크고 아름다운 농장이 있었다. 농장 주인은 농부들에게 친절하고 이웃과 사이가 좋은 부자였다. 그의 딸 수지는 꽃과 새들을 사랑하고 농장 일을 좋아하는 예쁜 여성으로 성장했다. 그녀는 농부 아저씨들을 도와 즐겁게 농장을 가꾸고 가축들을 위해 건초 만들기를 좋아했다. 옷과 요리 만드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어느 날 수지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마차를 몰며 마을로 가고 있었다. 마을에 가까운 언덕에 왔을 때 조가 강도짓을 하려고 그녀의 마차를 막아섰다. 그리고 조는 그녀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수지도 같이 조를 보았다. 이때도 수지는 늘 아름다운 꽃들과 새들을 바라보는 사랑의 눈길로 조를 바라봤다.
“나는 강도 조다. 마차를 내놓아라”라고 말하려던 조는 자기를 강도로 쳐다보지 않고, 아름다운 꽃과 새처럼 봐주는 수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마침내 조가 말했다. “이번 금요일 댄스파티에 함께 가주겠니?” 그 마을에는 금요일마다 댄스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수지는 “아, 네가 조구나, 나도 너의 이야기를 들었지… 그래 네가 신사가 된다면 댄스파티에 함께 갈게”라고 답했다.
조는 수지가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잃어버렸던 물건들이 제자리에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조는 농장으로 가서 수지의 아버지에게 일자리를 얻어 농부가 되었다. 그는 매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좋은 체격을 가진 조는 수지와 함께 금요일 밤에는 댄스파티에 가곤 하였다. 다른 청년들의 부러움 속에 수지와 춤을 추었다. 1년 후 수지와 조가 토요일 저녁에 함께 드라이브를 하고 주일에 교회에 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몇 달 후 둘은 결혼했다. 조는 충성된 일꾼으로 일했으며 이웃이 병들면 간호하고 일을 도와주었다. 사람들은 조가 범법자였다는 사실을 곧 잊어버리게 되었다.
수지의 부모는 돌아가시고, 수지와 조는 농장을 더 잘 경영했다. 특히 조와 수지는 소년원과 교도소 출소자들에게 농장을 소개하고 초대했다. 그들은 농장에 와서 일주일 혹은 몇 달을 함께 일하며 조와 좋은 친구가 돼 사회로 복귀했다. 아주 농장에 정착하는 이들도 있었다.
자기를 강도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강도짓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아름다운 꽃과 새를 바라보는 눈길을 보내는 사람에게 강도짓을 하기는 어려우며, 그 눈길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한다.
조의 이야기가 수심에 잠겨 울고 있을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부모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기도한다.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