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남들 덕분에 얻는 행복
입력 2013-05-31 18:03
36개국 중 27위, 23개국 중 23위. 앞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긴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 순위이며, 뒤는 2012년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 순위이다.
행복은 개인의 주관적인 만족감이기에 이를 정량화·계량화하여 측정하는 행복지수도 삶에 대한 만족도나 소득, 건강, 사회적 신뢰 등 개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요소를 많이 고려한다. 심지어 영국 과학자들은 행복이 개인의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연구결과도 내놓았다.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을 신경세포 안으로 운반하는 일을 담당하는 ‘5-HTT’ 유전자가 바로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 그 유전자가 긴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가 2배 정도 높다고 한다.
그러나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남의 덕분이라는 연구결과가 더 많다.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진이 약 10년간 수천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을 추적한 결과, 가까운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자신도 행복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자신의 행복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옆에 사는 이웃과 1마일 이내에 사는 친구, 가까이 사는 형제자매 순이었다. 행복한 사회는 행복한 이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접촉을 통해 행복이 전파되기 때문이라는 게 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기혼 부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또 다른 연구에서는 배우자가 행복할 때 자신도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당사자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배우자가 행복한 일을 겪으면 자신의 나쁜 일에 대한 불행감이 상쇄되는 식이다.
이런 현상은 동물에게서도 똑같이 관찰되었다.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할 때 세레나데를 부르는 금화조는 고도로 발달된 사회성을 지닌 조류이다. 이 새들에게는 세레나데가 종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연구 결과 암컷 앞에서 노래하는 수컷은 쾌감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활성화되었지만, 암컷 없이 혼자 지저귀는 수컷의 경우 뇌의 상태에 별 변화가 없었다. 즉, 새들도 상대방이 세레나데를 들어줄 때 비로소 행복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게 아니다.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 때문에 웃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웃게 만드는 이는 모두 남이다. 그 덕분에 행복해지니, 아무래도 행복은 내 탓이 아닌 남 탓인 것 같다.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