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호철] ‘팅커벨’의 습격

입력 2013-05-31 18:49

영국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의 소설 ‘피터팬’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나라 네버랜드로의 여행을 그린 동화다. 소설에서 어릴 적 부모를 잃은 피터팬은 12세 소녀 웬디와 그의 동생 등과 함께 애꾸눈 해적 후크 선장을 상대로 온갖 모험을 펼친다. 여기에 ‘팅커벨’이라는 요정도 등장한다. 팅커벨은 웬디와 그의 동생들에게 요정 가루를 뿌려 하늘을 날게 해준다.

몸길이 10∼20㎜, 편 날개의 길이가 50㎜ 정도인 ‘동양하루살이’라는 곤충이 요즘 창궐하고 있다. 날개는 반투명하며 위쪽 가장자리 부근은 초록색이고, 검정과 흰 줄무늬의 더듬이와 기다란 꼬리가 있다. 생김새 때문에 ‘팅커벨’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강변에 알을 낳고 매년 5∼7월쯤 성충으로 성장한 뒤 야간 조명을 보고 모여드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이름과 달리 보통 2∼3일, 길게는 1주일 정도 생존한다. 입이 퇴화돼 물지 않기 때문에 외관상 혐오감을 주는 것 외에는 균을 옮기는 등의 직접적인 피해는 주지 않는다.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와 청담동 명품거리도 대거 출몰하는 동양하루살이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해질녘이면 떼 지어 날아와 화려한 조명을 뽐내는 쇼윈도, 가로등, 벽면에 다닥다닥 달라붙는다. 상점 주인들은 영업을 하려면 문을 열어놔야 하는데 동양하루살이 때문에 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전기 파리채로 태우고 빗자루로 쓸어 내지만 워낙 개체수가 많아 역부족이라고 한다. 매출 피해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동양하루살이는 이 지역뿐 아니라 깨끗한 강이나 하천을 끼고 있는 대부분 지역에서 발생한다. 2급수에 서식하는 수질지표종으로 과거엔 한강 상류에서만 서식했지만 수질이 개선되면서 활동 범위를 넓혀 서울 중심지까지 등장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당 자치구가 방제 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미봉책 수준이다. 한강변이 상수원보호구역이자 생태보전지역이라 사실상 살충제를 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식지에 천적을 풀어 유충을 잡아먹게 하거나, 해충퇴치기를 설치하지만 큰 성과는 못 보고 있다. 획기적인 방법이 없다면 날벌레와의 끔찍한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다.

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