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약가계부 신선하나 금과옥조 돼선 안 된다
입력 2013-05-31 18:50
정부가 어제 발표한 공약가계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았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재임 5년간 공약 이행에 소요되는 자금 조달계획을 꼼꼼히 세운 것은 역대 정권 중 처음 있는 시도다. 과거 정권들이 대선 기간에는 실천하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했다가 정권 출범 이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렸던 것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진전이다.
문제는 계획대로 140개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134조8000억원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증세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27조2000억원,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해 18조원을 조달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1993년 문민정부의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역대 정권마다 검은 돈을 끌어내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늘리고, 현금 영수증을 발급하는 등 팔을 걷어붙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밀어붙이면 중소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고, 기업투자가 위축돼 경기회복이 늦어지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비과세·감면제도는 중소기업이나 서민·농민층에 집중돼 있어 이를 급격하게 줄일 경우 반발에 부딪힐 게 뻔하다.
세출을 절감해 84조1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것도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지 않다. 당장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서 11조6000억원을 줄이겠다고 하자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이 반대하는 상황이다. SOC 예산감축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방공약과도 상충돼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숙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약가계부가 금과옥조인 것처럼 경직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재정상황을 봐가면서 공약이라 하더라도 씀씀이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정부는 2014∼2017년 성장률을 4%로 잡았지만 경제상황이 안 좋을 경우 세입이 더 줄어들 수 있다. 특히 복지공약은 면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올해 3월부터 0∼5세 영·유아 무상보육이 전면 확대됐지만 지자체 예산이 고갈돼 중단위기에 놓인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