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채플’이 깨어난다] 채플, 문화의 옷을 입다

입력 2013-05-31 17:21 수정 2013-05-31 19:51


지난 28일 오전 10시 서울 월계동 인덕대학교회. 채플(Chapel·기독교학교의 예배) 참석을 위해 모인 600여명의 학생들은 이날 목사의 설교 대신 선후배, 친구가 부르는 찬양을 들었다. 이 대학에서 매년 열리는 ‘CCM & CCD 경연축제’에서다. 50분간 기독교적 메시지가 담긴 음악과 춤, 영상으로 꾸며진 채플은 학생들에게 어느 때보다 집중도가 높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독교 신자인 영어과 강윤아(19·여)씨는 “일반채플 땐 설교시간에 떠드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는데 오늘은 비교적 분위기가 괜찮았다”며 “학교에선 설교 중심의 예배보단 공연 등을 가미한 문화채플을 드리는 게 좋다고 본다. 신앙이 없는 친구들도 이럴 때 더 마음을 여는 편”이라고 말했다. 종교가 없다고 밝힌 방송연예과 박세진(22·여)씨 역시 문화채플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박씨는 “CCM은 하나님을 주제로 다루지만 예배음악 같지 않아 부담감 없이 채플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채플, 눈높이를 맞추다



기독교 사학의 채플이 다양해지고 있다. 채플시간에 사랑, 나눔 등 기독교 가치관이 담긴 영화를 상영하거나 연극·힙합·CCM 공연으로 채플을 꾸미는 학교가 적지 않다. 외국어에 관심 많은 학생과 유학생을 위해 외국어 채플을 개설하거나 명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학교도 점차 느는 추세다.



이처럼 기독교 사학의 채플이 다채로워진 이유는 무교이거나 기독교인이 아닌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다. 종교적 언어로 점철된 예배 대신 문화행사를 채플시간에 선보여 거부감을 줄이고 더 많은 참여와 호응을 유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대부분의 기독교 사학 채플에서 감지되고 있다. 연세대는 지난해부터 채플을 일반·신앙·영어채플 3가지로 분류했다. 비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채플은 주로 강연형식으로 진행된다. 대부분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이 강단에 서나, 비기독교인이라도 기독교 가치를 공유하는 명사면 특별히 초빙되기도 한다. 기독교인을 위한 신앙채플은 예배형식으로 드리며 영어채플은 유학생과 영어에 관심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또 매 학기 학생주관 채플을 진행해 학생 스스로 채플을 만들고 이끌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숭실대 역시 ‘기대되는 채플, (학생이) 참여하고 싶은 채플’을 목표로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채플의 변화를 시도해 왔다. 숭실대 교목실이 가장 중점을 두는 사안은 ‘강사의 다변화’다. 그간 목회자 설교 위주였던 기존 채플에서 벗어나 평신도가 기독교 가치를 강연하는 방식이 점차 늘고 있다.

김회권 숭실대 교목실장은 “비기독교인을 위한 채플을 개설하고 학생 참여 프로그램을 늘려 기독교 가치가 삶과 영혼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중점적으로 전하려 한다”며 “이러한 채플의 변화가 학생들에게 흥미뿐 아니라 영성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율형사립고인 대광고도 문화채플과 강연식·체험학습식 채플 도입에 적극적이다. 우수호 대광고 교목실장은 “신앙이 없는 학생도 부담 없이 기독교를 알아가도록 2011년부터 문화채플을 설교보다 더 많이 배정했다”며 “앞으로도 채플시간을 예체능 방면의 다양한 공연과 강의 등 열린 예배의 장으로 활용해 학교의 전통인 기독교 신앙 계승은 물론 바람직한 인성 발달을 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학생과 소통하려는 지속적 노력 필요

기독교 사학의 변화 노력에도 학생들 반응은 대체로 미온적이다. 종교색을 줄이고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함에도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채플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독교 사학은 모든 학생들이 일정 기간 동안 채플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학칙을 정했다. 채플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에겐 장학금이나 교환학생 선발 시 불이익을 주는 곳도 있다. 이러한 요건 때문에 2011년에는 일부 대학에서 ‘채플 대리 출석 아르바이트’가 성행하기도 했다. ‘종교 자유’를 이유로 집단채플거부 운동을 벌이거나 대학에 소송을 건 사례도 나왔다.



비기독교인이 학생의 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 사학에서 채플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기독교 현장 목회자와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채플을 더 이상 종교 강요가 아닌 학교 전통과 기독교 가치를 전수하는 시간으로 느끼도록 각 학교가 참여와 소통의 장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주엽 성공회대 교목신부는 “학생들에게 좋은 것을 나누겠다는 선의로 시작한 채플이 방식 때문에 오히려 비난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강제는 기독교 가치에 맞지 않으므로 채플을 예배와 동일시하면 안 된다. 넓게 보면 복음화란 인간에 대한 섬김과 봉사이므로 비기독교인을 배려해 인간학, 비폭력대화 등 채플을 대체할 강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참여하지 않는 예배는 의미가 없으므로 학생이 공감할 수 있는 채플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기독교 사학의 설립 취지가 분명하다는 이유로 학문적 목적으로 입학한 아이들에게 예배만 강요하면 반발이 심할 수 있다”며 “설립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보단 토크콘서트나 기독단체 봉사활동 등에 학생참여를 유도해 직접 기독교 가치를 체득할 수 있도록 학교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