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DJ 전설, 별이 빛나는 곳으로 떠나다… 폐암 투병 이종환씨 별세
입력 2013-05-30 20:41
시대를 풍미한 라디오 DJ이자 한국 방송가의 거물인 이종환(76)이 30일 새벽 1시쯤 서울 하계동 자택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 2011년 폐암 진단을 받은 고인은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다 약 10일 전부터 자택에서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1964년 라디오 PD로 MBC에 입사한 이종환은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낸 DJ계의 대부였다. 7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며 스타덤에 오른 그는 80년대엔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통해 명성을 이어갔다. 89년엔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92년 한국으로 돌아와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을 진행하며 명불허전의 진행 솜씨를 뽐냈다.
96년엔 20년간 MBC 라디오를 진행한 사람에게 주는 ‘골든마우스상’을 최초로 받기도 했다. 그는 폐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지난해 11월까지 교통방송(tbs)에서 ‘이종환의 마이웨이’를 진행하는 등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방송생활만큼이나 구설에 휩싸인 적도 적지 않았다. 2002년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진행할 땐 자신을 비난한 글을 올린 청취자에게 전화를 걸어 폭언을 퍼부은 사실이 알려져 방송에서 하차했다. 이듬해 7월 ‘이종환의 음악살롱’에서는 ‘음주 방송’으로 물의를 빚었다.
고인은 가요계 역사를 거론할 때도 빠져선 안 되는 인물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우리나라에 팝송 문화를 이식한 선구자였으며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70년대 청년문화를 실질적으로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60∼70년대 대중음악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가요계 보스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고인은 70년대 ‘별밤에 부치는 노래’라는 시리즈 음반을 제작하며 당시 신인이던 송창식, 윤형주 등 많은 포크 가수를 대중에게 소개했다.
이들 외에도 가수 이장희는 고인의 권유로 71년 1집 ‘겨울이야기’를 발표하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가수 이문세는 이종환이 진행한 ‘…밤의 디스크쇼’를 통해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이문세는 트위터에 “며칠 전 통화했을 때 병세가 악화됐을 텐데 제게 웃으시며 이번 공연 꼭 가서 보겠다고 하시던, 쇠잔한 목소리가 지금 또렷한데 더 큰 목소리로 노래할게요 아저씨”라는 추모의 글을 남겼다.
고인이 가요사에 남긴 족적 중 빠뜨릴 수 없는 건 음악감상실 ‘쉘부르’다. 이종환은 73년 서울 종로2가에 ‘쉘부르’를 개업해 가난한 음악인들에게 무대를 제공했다.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쉘부르’를 통해 남궁옥분, 어니언스, 채은옥, 양하영, 쉐그린 등이 가수로 성장했다. 방송인 허참, 주병진도 ‘쉘부르’에서 기량을 닦았다. 사람들은 이들을 ‘이종환 사단’이라고 불렀다.
남궁옥분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종환 선생님은 통기타 가수들에겐 요람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젠가 문병을 갔다 ‘얼른 완쾌하셔서 방송에 복귀하시라’고 말씀드리니 ‘이젠 (방송) 못하지’라고 답하셨는데, 얼굴에 아쉬움과 회한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채은옥은 “워낙 말씀이 없는 분이라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말보다는 행동으로 많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줬다”며 “방송계의 전설이다. 앞으로도 그런 분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성성례씨와 1남3녀(한열 효열 효선 정열)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일 오전 6시30분.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