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회규범의 재확립, 음주·흡연 문화부터 바꿔야
입력 2013-05-30 19:08
세계 금연의 날 맞아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자
사회의 건전한 기강이 크게 흐트러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기간 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국격(國格)에 먹칠을 하더니 명예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노동운동가의 성폭행 사건, 경찰 간부의 성추행 의혹도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봉사활동을 하라는 징계를 받은 고교생은 치매 노인을 조롱하고, 경복궁의 고즈넉한 밤경치는 술판에 묻혔다. 사회 전체가 비뚤어진 가치관에 함몰돼 최소한의 규범을 지키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일탈의 길로 질주하는 모습이다.
온갖 부끄러운 사건 이면에는 잘못된 음주와 흡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술과 담배에 관대하다. 웬만한 잘못에는 “술에 취해…”라는 변명이 통한다. 대학에 입학하면 오리엔테이션을 빙자해 폭탄주를 배우고, 술자리를 끝까지 지켜야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그릇된 생각에 오염되기 시작한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 7조3000억원을 넘는다. 대부분 성폭력 사건은 술 때문에 발생한다. 새내기 학생이나 신입사원이 음주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과도한 음주와 이를 너그럽게 보고 넘기는 사고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남성 흡연율은 40%가 넘는다. 청소년 흡연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여성 흡연율도 꾸준히 늘고 있다. 담배가 마약만큼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간접흡연의 폐해가 직접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더하다는 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흡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와 공공장소에서 연기를 뿜어낸다. 초등학생에게 금연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흡연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금주·금연을 위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실효성 있는 정책은 주저하고 있다. 담뱃값 인상은 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인데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눈치 보기로 번번이 좌절됐다. 대학 안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영세사업자 몰락 우려 등을 앞세운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주폭(酒暴) 및 공공장소 흡연 단속은 일과성 캠페인 식으로 진행될 뿐이다. 강한 의지를 담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정책 집행이 절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술과 담배의 폐해가 우리 사회의 기본적 규범을 허무는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국민 개개인이 마음 속 깊이 새기는 의식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릇된 음주·흡연 문화는 개인의 건강과 경제적 손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심각한 범죄로 이어져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고, 미래 세대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금연의 날’이다. 피우던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작은 실천이 흐트러진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다시 정립하는 첫 걸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