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은행 비밀주의 깨지나… 고객정보 제공 법안 마련

입력 2013-05-30 18:40

세계 각국의 검은돈 보호로 악명 높은 스위스 은행들이 ‘비밀주의’를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위스 정부가 자국 은행에 대해 미국 정부와 개별적으로 합의한 뒤 고객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30일 보도했다.

새 법안은 스위스 은행의 철저한 고객정보 보호정책을 이용해 탈세자금을 숨겨두는 미국인들을 찾아내려는 미 정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만들어졌다. FT는 에블린 비드머 슐룸프 스위스 재무장관이 “이 법안은 실용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면서도 미국의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새 법안은 향후 1년 동안 스위스 은행에 은행관계자 및 고객 활동 정보를 미국 정부에 제출할 권리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까지는 ‘은행비밀유지법’에 따라 은행의 정보 유출이 엄격히 금지됐었다.

최근 미국 정부는 고객의 탈세를 도운 스위스 은행에 소송을 제기하고 막대한 벌금을 물리고 있다. 2009년 탈세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에 기소된 스위스 최대은행 UBS는 7억8000만 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내야 했고, 1741년 설립된 스위스 최고(最古) 은행 베겔린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뒤 5790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벌금을 선고받고 지난 3월 폐업한 바 있다.

스위스은행연합은 법안을 두고 “과거를 청산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미국 정부와 어느 선까지 합의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