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지배구조 개선 외치면서… 대기업 순환출자 되레 늘었다

입력 2013-05-30 18:35 수정 2013-05-30 22:08


대기업의 순환출자가 5년 새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수십개를 지배하는 모순적 현상도 여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신규순환출자 금지법 제정을 조속히 추진할 방침이다.

◇대기업 순환출자 악용 여전=공정위가 30일 밝힌 ‘2013년 대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에 따르면 조사 대상 62개 그룹(대기업집단) 중 14개 그룹이 모두 12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중 69개(55.6%)는 2008년 이후 새롭게 생성됐다.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지배구조 개선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1인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한 것이다. 특히 롯데그룹은 5년 동안 순환출자 고리가 32개나 늘었다.

순환출자란 A기업이 B기업에 출자하고, B기업이 다시 C기업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A기업을 소유한 총수일가가 B와 C기업까지 지배하는 구조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대표적 그룹 총수들은 이 방식을 통해 평균 1%도 안 되는 적은 지분으로 전체 그룹의 경영권을 갖고 있다.

공정위 신영선 경쟁정책국장은 “대기업의 복잡한 출자구조가 여전하다”며 “최근 생성된 순환출자 고리는 규제 회피, 부실 계열사 지원, 총수 일가 지배력 유지 및 강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장악하는 총수=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4.36%로 전년(4.17%)보다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10대그룹의 총수 지분율은 0.99%로 2년 연속 채 1%를 넘지 못했다. 대형그룹일수록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기형적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총수일가 지분율을 보면 SK그룹이 0.69%로 가장 낮았다. 이 중 최태원 SK그룹 회장 지분은 0.04%에 불과했다. 삼성그룹 역시 이건희 회장 단독 지분율은 0.69%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일가 지분을 다 합쳐도 1.27%에 불과했다. 현대중공업(1.17%), 동양(1.38%), 현대(1.97%)그룹도 총수일가 지분율이 낮았다.

반면 총수가 있는 그룹의 내부 지분율은 높았다. 조사 대상 62개 그룹의 평균 내부 지분율은 31.65%였지만 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은 54.79%에 달했다. 내부 지분율은 계열사 전체 자본금 중 총수일가 등이 보유한 우호 지분 비율이다. 쉽게 말해 총수가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 절반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기업 출자구조 역시 총수가 있는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출자 단계도 많았다.

공정위는 다음 달 국회에 기업의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키로 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신규순환출자 금지 법안은 아직까지 정무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신규순환출자 금지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첫걸음인 만큼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