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일뿐… 팔순 농구감독, 또다른 도전
입력 2013-05-30 18:22
“나이 여든한 살이 뭐 별건가요.”
1980년대 국내 여자농구에서 ‘호랑이 사령탑’으로 코트를 호령했던 임영보 감독. 1933년생이라 우리 나이로 81세다. 90세를 바라본다고 해서 망구(望九)라고 불리는 81세. 웬만한 노인들은 가만히 서 있기도 쉽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임 감독은 코트에서 손녀뻘 선수들과 함께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일본여자농구(WJBL) 야마나시 퀸비스 감독에 선임돼 그라운드로 돌아온 것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임 감독은 군대시절 농구 마니아인 사단장 눈에 들어 농구를 시작했다. 전역 후 대한통운 실업팀에서 선수로 활약했고 은퇴 후 신광여고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0년대 국민은행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임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은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선경-현대산업 감독을 거쳐 98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항공팀(JAL)을 맡아 부임 당시 3부 리그였던 팀을 이듬해 2부로 끌어올렸고 2000년에는 1부로 승격시켰다. 2005년에는 일본 최고 권위의 제71회 전국종합선수권대회(올 재팬)에서 사상 처음으로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당시 우승 스토리는 일본에서 영화와 소설로도 만들어질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9년까지 JAL 사령탑을 지낸 임 감독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일본 니가타현 농구협회 순회 코치로 지역 지도자 및 선수들을 가르쳤다.
임 감독이 이번에 감독을 맡은 야마나시는 만년 꼴찌 팀이다. 지난 시즌 WJBL 12개 팀 가운데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22전 전패를 당했다. 한 맺힌 야마나시 구단 관계자는 3부 리그 팀을 일본에서 권위 있는 대회인 올 재팬 우승까지 이끌었던 임 감독에게 감독직을 맡아 달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임 감독은 “도저히 안 되는 팀이라는 판단 아래 처음에는 해산을 검토했다고 들었다”며 “지인의 소개로 인연이 닿았는데 ‘다음 시즌에는 1승만 하게 해 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임 감독은 현재 8명에 불과한 선수들을 데리고 드라이브 인이나 슛 동작 등 기본기부터 가르치고 있다. ‘팔순청춘’이라고 줄곧 외치는 임 감독이 꼴찌의 반란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손녀뻘 선수들을 지도하는데 체력적인 문제는 없느냐는 말에 뚝심의 ‘할아버지 감독’은 “아무 지장 없다. 코치 없이 나 혼자 가르치고 있다”며 껄껄 웃었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