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록 선두주자’ 이승열 “어느 집에 가도 있는 치약 같은 음악 피하고 싶어”

입력 2013-05-30 17:39 수정 2013-05-30 17:40


혹 누군가는 너무 낯설다고 느낄 수 있겠다. 낯설기 때문에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던록의 선두주자 ‘유앤미블루’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이승열(43)이 발표한 4집 앨범 ‘V’ 얘기다.

음반 홍보 관계자가 “좀 어려워요”라며 앨범을 건네고, 건강음료 CF의 한 구절처럼 “참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네요”라고 한탄하게 만든 음반. 대중과 평단에서도 “이제까지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런 음악은 없었다”는 찬사와 동시에 “불친절하다 못해 대중성을 포기한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게 한 ‘문제의 앨범’. 이승열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서울 논현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29일 그를 만났다.

이런 반응, 예상했을까. “(음악이 제대로 평가받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는 예상은 늘 해요. 실망스럽고 기대에 못 미친다거나 또 정반대 평가도 있던데. 뭐가 그렇게 더 불친절해졌나, 하는 의문은 있어요.” 크게 두 가지일 듯하다. 하나는 그의 매력적인 보컬이 들려주던 ‘노래’ 대신 웅얼거리거나 허공을 향해 내뱉는(?) 듯한 ‘소리’가 늘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한 현악기 소리의 등장. 앨범 내내 들리는 소리는 바로 베트남 전통악기 ‘단보우(Dan bau)’다. 평소 즐겨듣던 클래식 라디오 채널에서 처음 이 소리를 접했다. 기타 같은 현악기인 줄 알았단다. 한 줄 악기인 단보우는 뭐라 말할 수 없이 애잔하고 몽환적인 음색이 특징.

이승열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 반응은 인간의 본능”이라며 낯설어하는 대중의 반응을 어느 정도 수긍한 뒤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공격적이거나 투박해서 과연 음악으로 들릴 수 있을까 하는 소리도 많다. 하지만 단보우의 소리는 느낌만으로 해석하자면 100명 중 90명 이상이 아름답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베트남의 단보우 연주자 레 화이 프엉과의 작업은 만족스러웠고 많은 영감을 줬다.

홍익대 ‘카페 벨로주’에서 현장 라이브 방식으로 녹음하면서 소리의 느낌은 극대화됐다. 이승열은 “디지털의 장점도 많지만 그보다는 연주자만이 낼 수 있는 소리들이 모아지는 게 더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프엉의 단보우와 이승열의 기타, 여기에 드럼과 베이스 연주자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그 공간에서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울림까지 담아낸 것이다. 수록곡 10곡 중 6곡을 그렇게 녹음했다.

첫 곡 ‘미노토어’는 이승열이 “올림픽 선수단 입장 때 기수 같은 느낌을 주는, 앨범을 아우르는 선봉으로 내세우고 싶은 얼굴”이라고 표현한 곡. 모로코 출신 뮤지션 오마르 스비타르가 프랑스어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구절을 낭독한다. 이 앨범이 마치 이방인, 그리고 낯선 것들과의 대화를 암시하듯. 타이틀 곡은 앨범 마지막에 수록된 ‘시닉(cynic)’이다. 그는 “1번부터 6번까지의 곡이 주는 무모하고 새로운 요소들과 기존 팝송이 가진 구조적 친근함을 가진 곡”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앨범 중 유일하게 기존 관행에 ‘순응’해 만든 곡일 수 있다.

사실 이승열의 음악 뒤엔 늘 ‘좋지만 어렵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2003년 발표한 1집 ‘이날, 이때, 이즈음에’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지만 2집 ‘인 익스체인지’는 나름 친절하게 작업했음에도 외면당했다. 2년 전 발표한 3집 ‘와이 위 페일’은 “역시 이승열답다”는 평가를 이끌어내며 그의 건재를 알렸다. 4집은 그 연장선상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음악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이승열은 “내 계획대로 잘 가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앨범에 대한 비판은) 내 손해가 아니라 그들의 손해다, 이런 마음가짐이다”고 했다. 그는 “내 음악은 지금 이 순간 나의 기록이지 대중을 의식하고 만든 상품이 아니다”며 “어느 집에 가도 있는 치약 같은 건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대중친화적’인 게 뭔지 모르겠고, 그 말 자체가 음악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 같이 느껴진다”며 “반응이 바로 오는 것도 좋지만 10년 뒤에 올 수도 있는, 그런 것까지 염두에 뒀다고 하면 이상한 소리냐”고 되물었다. 이승열이 인도하는 낯선 곳으로의 여정에 동참할지 말지는 이제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