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재벌이 잠재적 범죄자 안되려면
입력 2013-05-30 19:08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다. 공개수사 2주일 동안 압수수색만 다섯 번이었다. 제대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다. 다음달쯤 이 회장은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서야 할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포토라인 앞 재벌 회장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배임·횡령 혐의로, 최태원 SK 회장은 횡령 혐의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조세포탈과 배임으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횡령·배임 혐의로 포토라인에 섰다. 이번에는 이재현 회장 차례일 뿐이다.
재벌들은 왜 이리 자주 검찰에 불려오는 것일까. 우리나라 재벌들이 다른 나라 유명 기업인보다 유달리 불법행위를 많이 하는 것인지, 우리나라 검찰이 재벌들에 특별히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법률이 너무 경직돼 있는지 알 수 없다. 설사 특별히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재벌들에는 ‘돈’이 있다. 수많은 법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을 수 있고, 그룹 회장을 신격화하는 충성스러운 엘리트 임직원들도 많다. 이들의 머리와 힘을 빌린다면 검찰 수사를 원천적으로 피할 수 있는 방법 정도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식적인 의문이다.
이번 이재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이러한 의문이 조금은 해소됐다. 그동안 이 회장과 CJ그룹을 둘러싼 많은 의혹들이 보도됐다. 국내외 차명 재산을 운용한 의혹, 해외 계좌를 통한 주가조작 의혹, 부동산 위장거래 의혹, 미술품을 통한 탈세 의혹, 계열사 간 부당거래 의혹 등이다. 이런저런 의혹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상속’과 ‘세금’의 문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회장이 굴렸다는 수천억원대 비자금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돈이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손자다. 이 회장은 창업주로부터 주식과 돈을 물려받았다. 1993년 삼성그룹에서 제일제당이 분리된 이후 이 회장은 이 돈을 종잣돈 삼아 CJ그룹 지배권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물려받은 돈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다가 2008년 비자금 관리인 사건이 터지면서 증여세를 1700여억원이나 납부해야 했다. 검찰은 당시 밝혀지지 않은 비자금이 더 있고, 2008년 이후에도 이 회장이 비자금을 굴리면서 탈·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가정이지만, 이 회장이 애초에 증여세를 제대로 냈다면 이번 검찰 수사는 없었을 수도 있다.
누진세인 증여세는 30억원이 넘을 경우 50%의 세율이 적용된다. 1조원을 물려받으면 5000억원을 내야 한다. 세금을 많이 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증여세를 가장 많이 낸 사람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부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지난 2007년 3500억원의 증여세를 냈다. 2위는 고(故)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유가족이 납부한 1830억원이다. 신세계와 교보생명은 우리나라 10대 그룹 안에 끼지 못한다.
증여세를 피하려는 재벌가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재벌가 3, 4세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세금 없이 이어받는 순간, 이들은 늘 조세포탈의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사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재벌들의 상속을 둘러싼 악순환을 끊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증여세를 확 줄이거나 재벌들의 생각과 관행이 확 바뀌면 된다. 전자는 불가능하다. 후자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덕분에 국민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포토라인과 법정에 선 재벌들을 봐야 할 듯하다. 딱한 일이다.
사회부 남도영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