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꽃제비 2
입력 2013-05-30 17:48
#우리나라에선 흥행에 실패했지만,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 중 하나가 ‘아르고’다. 지난 2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1월에는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르고’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1979년 이란 테헤란의 미 대사관이 시위대에게 점령당했을 때 직원 6명이 지하통로를 통해 캐나다 대사관저로 피신한다.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지내는 이들을 본국으로 무사히 데려가기 위해 CIA 구출전문 요원이 나선다. 그는 영화를 만들겠다면서 이란에 입국한 뒤 미 대사관 직원들을 배우로 위장시켜 탈출에 성공한다.
숨이 막힐 듯한 순간들이 적지 않지만 감독은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막 출발한 비행기를 멈추기 위한 이란 군인들의 추격을 뒤로 하고 비행기가 이륙하자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에서는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극적으로 사지(死地)에서 벗어난 이들과 달리 사지에서의 탈출 성공을 코앞에 두고 좌절된 사건이 일어났다. ‘꽃제비’ 출신 탈북 청소년 등 9명이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것이다.
북한은 과거와 달리 주도면밀했다. 정황을 보면, 탈북자들이 라오스에 도착해 경찰에 붙잡힌 직후부터 북한은 기민하게 움직인 듯하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이민국으로 옮겨지자 북한 요원이 찾아가 인적사항 등을 조사한 뒤 북한 여권과 단체여행비자 등을 준비해 항공기 편으로 전격 압송했다.
그 이유도 드러나고 있다. 납북된 일본인 아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보도에서 알 수 있듯 반드시 데려가야 할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이지마 이사오 일본 내각관방 참여(총리자문역)의 방북을 계기로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북·일관계가 다시 냉각되지 않도록 일본인 아들 송환 작전에 나섰을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탈북자가 라오스를 통해 우리나라로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라오스 정부의 협조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라오스 정부는 북한이 한창 작전 중일 때 우리 정부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막을 피웠다. 북한과 짝짜꿍이 돼 우리 외교부를 농락한 셈이다.
정부는 탈북자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재발 방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 북송 경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서울에 주재하는 라오스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항의하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