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친절한 서대문세무서 직원들

입력 2013-05-30 17:51


“세무조사는 깐깐하게 하지만 민원인을 대하는 모습은 서비스맨처럼 상냥했다”

정치·사회·경제 분야의 주요 부처에서 취재활동을 했다. 하지만 국세청을 출입한 적은 없다. 세무서에 가 본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개인사업자는 세무서를 찾을 일이 있겠지만 직장인은 세무서에 갈 일이 거의 없다.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하면 회사에서 처리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난생처음 세무서에 볼일이 생겼다. 기사가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를 놓친 경우라도 5년 이내에는 환급받을 수 있다”고 밝힌 기사였다. 개인 민원이라 스스로 부딪쳐 보기로 했다.

서울 응암동에 있는 서대문세무서별관으로 갔다. 방문 이유를 설명했더니 홍제동에 있는 서대문세무서 본관으로 가라고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홍제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세무서 직원들은 고압적이고 깐깐할 것이라는 세간의 선입견이 한 꺼풀 벗겨졌다.

소득세과 직원이 친절하게 민원인을 맞았다. 기자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용건을 말하자 서류에 민원 내용을 적으라고 했다. ‘장모를 부양가족으로 올리고 5년 간 소득공제 누락분을 돌려받고 싶다’고 썼다. 민원서류 신분증 가족관계증명서를 함께 제출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훑어보던 직원이 지적했다. “이 서류를 보면 민원인의 장모는 2009년 말부터 가족으로 올라 있다. 조사 결과 소득공제 누락분을 받는다고 해도 3년치만 해당된다.”

가족관계증명서를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대법원가족관계 등록예규 제277호에 따라 경북 성주군의 한 면사무소에서 2009년 12월 22일부로 장모를 추가로 등재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황당했다. 26년째 일부종사(一婦從事)했는데 서류상으로는 3년 5개월 전부터 장모였다니 실로 어이가 없었다.

일단 3년치라도 조사해 달라고 했다. 며칠 뒤 직원이 전화해 “장모에게 용돈을 드린 통장 사본을 제출하지 않으면 부양가족으로 인정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사정을 이야기했다. “매주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식사를 같이 하는데 무슨 통장에 용돈을 입금하느냐. 칠순을 넘긴 장모가 불편하게 금융기관을 이용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으로 받는 21만원이 소득의 전부인데 이 돈으로 생활이 가능하겠는가. 자녀가 드리는 돈으로 생활하고 계신다.”

직원은 다시 한 번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했다. 국세청 간부에게 문의했더니 일선 세무서에서 배우자의 부모는 세밀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직원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의문점을 캐물었다. 결국 종합소득세를 환급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머지 2년치도 해결하고 싶었다. 먼저 가족관계증명서에 하자가 있다는 민원을 동사무소에 제기했다. 동사무소 직원은 호적등본이 제적등본으로 바뀔 때 성주군 면사무소 측이 민원인의 장모를 빠뜨렸다가 뒤늦게 오류를 발견하고 정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 일로 문의하는 민원인들이 더러 있다고 하면서 갱신된 제적등본을 제출하면 세무서도 이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대문세무서에 두 번째 민원서류를 냈다. 규정에 따라 첫 번째 민원은 소득세과에서 처리했는데 두 번째 민원은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서 맡았다. 납세자보호담당관실 직원은 ‘고객의 소리’ 접수·처리 결과를 문자로 알려주고 통지서를 집으로 보냈다는 전화도 걸었다. 통지서 내용은 2007년 귀속분은 국세부과제척기간(2013년 5월 31일)의 30일 전인 지난 1일을 넘겨 환급되지 않고 2008년 귀속분만 환급되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국세청(National Tax Service)은 국가정보원(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처럼 영어 이름에 서비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두 기관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힘이 있지만 영어 이름만 보면 서비스를 베푸는 기관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기자가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서대문세무서 직원들은 진정한 ‘서비스맨’이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