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창환 (17·끝) 장로교와 함께 한 70년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입력 2013-05-30 17:28 수정 2013-05-30 20:03
나는 지금 경기도 양평 양자산 자락에 있는 영성수련원 ‘모새골’에 와 있다. 모새골은 ‘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사방이 고요한 이곳에서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참 행복했구나. 하나님의 은혜로구나’라는 감사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나는 수재도 아니고 결코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다. 어떤 면으로 보든지 잘난 게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오히려 남보다 뒤떨어지는 게 많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남보다 앞서거나 남들을 리드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학대 학장을 거쳤지만 사실 배운 것도, 아는 것도 별로 없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하는 위선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를 진짜로 무언가 아는 사람으로 알고 오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학문을 주장하고 장려하는 데 남보다 뒤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진정으로 학문을 할 만한 재간도 능력도 없어서 괜스레 아는 척하고 다녔던 게 아니었는지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써주셨으니 행복한 인생을 살았노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질적으로 따진다면 부자로 산 것은 아니지만 한번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빈털터리인 나를 두 번씩이나 미국 유학을 보내주셨다.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많은 중책을 맡겨 주시면서 넘치는 사랑의 부요함을 누리게 하셨다. 일감을 주시고,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도 챙겨주셨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내 생애를 정리할 요량으로 계획했던 몇 가지 일까지도 마무리지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아직 생명을 이어가게 하셨다. 올 초였다. ‘아흔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는 와중에 모교인 장신대에서 강의를 부탁해왔다.
흔쾌히 수락하고 지난 3월부터 다시 강단에 섰다. 25년 만이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시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이어서 크게 어려움도 없고, 가르치는 가운데 새로운 깨달음도 얻고 있다.
내가 맡은 과목은 신약신학이다. 성경을 공부하는 신학도라면 마지막 단계 즈음에 공부하는 과목이다.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즉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틀어서 원 저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메시지를 전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나타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강의를 하면서 누리는 기쁨 중의 기쁨은 무엇보다 진리를 나누는 재미다. 하나님의 진리는 무궁한 것, 죽도록 노력해도 다 얻을 수 없다. 그렇기에 다 얻었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항상 더 깊은 진리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고 기회 닿을 때마다 후배,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창세기 2장에 에덴동산이 등장한다. 동산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더불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다(9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선악 지식의 나무’라고도 일컫는데, 우리는 선악의 나무를 분별하는 지식이 필요하다. 아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할 일이다. 목회를 준비하는 신학도들도, 현지 목회자들도, 나아가 한국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하면서 했던 얘기를 다시 되새겨본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살고 바로 전하는 것이 믿는 자의 본분이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