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생물, 그 속에 미래기술 숨어 있다
입력 2013-05-30 17:40 수정 2013-05-30 17:41
자연에서 배우는 청색기술/이인식(기획)/김영사
도마뱀붙이는 벽과 천장에 붙어 걸어 다닌다. 발가락 끝에서 아무런 접착물질을 분비하지 않는데도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비밀은 발가락 끝에 달린 수십만 개의 강모(剛毛·빳빳한 털)에 있다.
이 강모는 길이 1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직경 5㎛ 정도. 강모 끝은 수백 개의 가시로 분화돼 있고, 가시 끝은 주걱 모양을 하고 있다. 각각의 주걱 모양 판은 직경이 20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략 성인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된다. 도마뱀붙이 발가락 끝의 접착력은 강모 표면과 벽 표면 사이의 반데르발스 힘(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작은 힘)에 기인한다.
인간의 관찰력은 이런 자연의 지혜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공학자 론 피어링 박사와 안드레 가임 박사가 이 원리를 응용한 나노기술로 ‘게코 테이프’를 개발했다. 게코 테이프는 끈적끈적한 접착제 없이도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다. 역시 이 원리에 기반해 재활용건축자재를 이용한 흡착재도 나왔다.
바야흐로 인류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청색혁명’이 시작됐다고 이 책의 저자들은 말한다.
산업혁명이 자연을 채취해서 얻어진 것이라면 청색혁명은 어머니 격인 자연으로부터 배운 이른바 ‘청색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다.
청색기술이란 용어는 이 책 기획자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이 전작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2012)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 소장은 자연에서 배울만한 100대 기술을 경제적 측면에서 조명한, 벨기에 출신 환경운동가 군터 파울리의 ‘청색경제’에서 이 용어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국내외 전문가 10여명이 공동 집필한 이 책은 파울리도 저자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왜 청색기술일까. 이 소장은 “자연 시스템 자체가 수십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적의 생존능력을 검증 받았다. 여기에 더 이상 자연을 훼손하면서 이루어진 기술로는 인간의 생존마저 위협받게 되리라는 위기의식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청색사상, 청색기술, 청색경제의 3부로 구성돼 있다. 각각 청색기술의 사상적 배경, 청색기술의 사례와 현주소, 청색기술의 경제적 가치를 다루고 있다.
청색사상은 청색기술이 철학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오늘날의 환경 문제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화하고, 모든 가치는 인간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서양의 인간중심주의 사상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중심주의 대안으로 등장한 생명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 사상 또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예컨대, 생명중심주의는 개별 생명체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생명시스템 전체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을 바꾸자는 것이다.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조금 낮은 자세로 자연을 세심하게 살펴본다면 그 속에서 인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미를 돋우는 건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 2부 청색기술이다. 사실 청색기술은 이제 명명됐을 뿐 진작 현실화되고 있다. 자연을 본 떠 개발된 신물질을 보자. 섬유분야에서 연잎 효과를 이용한 섬유, 상어와 돛새치의 미세돌기를 응용해 개발된 전신수영복, 모르포 나비의 구조색을 이용한 모르포텍스가 있다. 담쟁이덩굴의 점액을 이용한 의료용 접착제, 전복껍데기 구조를 이용한 방탄소재도 등장했다. 청색기술은 항공기술, 건축, 도시개발에까지 응용되고 있다.
지난해 엄청난 관람객을 모았던 여수엑스포 주제관의 차양막은 ‘움직이는 지느러미 차양’이라는 별칭처럼 자연을 모방했다. 재생에너지 이용도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도 한다. 스페인 남부 도시 세비아의 사막 지방에 설치된 태양열 발전소 PS10과 PS20이 예다. 이 태양열 발전소는 ‘헬리오스타트’라고 불리는 각각 600여개의 반사거울이 하루 종일 태양을 따라 움직이면서 중앙 기둥에 태양빛을 집중시킨다. 해를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가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이처럼 청색기술이 자연과 공존하며 경제 효율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중국 일본 등 각국은 청색경제에 매진한다. 특히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흑묘백묘론’으로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뤘던 중국이 이제 청색고양이론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청색경제’를 창안했던 파울리의 다음과 같은 통찰이야말로 정부가 청색경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자연의 놀라운 본보기로부터 도출된 100가지 혁신기술에만 초점을 맞추어도, 우리는 향후 10년 동안 최대 1억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