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천재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 문제작 ‘눈먼 부엉이’ 국내 첫 번역 출간

입력 2013-05-30 17:52 수정 2013-05-30 19:29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한 이란 현대문학의 기수 사데크 헤다야트(1903∼1951). 그는 이란에서 유대계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에 버금가는 천재 작가로 추앙받는다. 그가 1937년 이란 독재정권의 박해를 피해 피신한 인도 뭄바이에서 등사기로 밀어 출간한 소설 ‘눈먼 부엉이’(문학과지성사)는 천 년 넘게 운문만 존재해온 페르시아 문학에 큰 파문을 던진 문제작이다.

고독한 필통 뚜껑 장식사가 벽에 비친 부엉이 모양의 자신의 그림자에게 들려주는 독특한 형식의 이야기에는 속물들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고뇌와 풍자, 혐오와 절망이 가득하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7쪽). 이 첫 문장은 ‘눈먼 부엉이’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도입부에 주인공과 여인이 등장한다.

어느 날 그는 작은 방의 네모난 환기구를 통해 우연히 바깥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된다. 그의 삶의 영감인 동시에 절망의 원천이 되어 버린 관능적이고 위험한 그 여인은 창밖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은 곱사등이 마부와 함께 반복적으로 그의 앞에 환영처럼 나타난다. “내 눈에 그녀는 한 명의 여인이자 동시에 초월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는 다른 모든 얼굴을 잊었다. 그녀의 시선을 받으면 내 온몸이 떨리고 무릎이 후들거렸다.”(29쪽)

어느 날 그 여인은 갑자기 그의 방에 들어와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죽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를 화판에 그리던 그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자 시신을 가방에 담아 곱사등이 마부와 함께 고대 도시 유적지에 매장한다. 이 곱사등이 마부는 명백히 화자의 또 다른 자아이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자신의 삶이 시작된 이래로 줄곧 하나의 시신이, 차갑고 생기 없는, 움직임도 없는 시신 하나가 어두운 방 안에서 자신과 함께 있어 왔다고. “검은 색 옷자락 한 귀퉁이를 들어 올리자 반쯤 굳어 있는 피와 우글거리는 구더기 떼 사이로 커다란 검은 눈동자 두 개가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 깊숙한 곳에 내 삶이 가라앉아 있었다.”(49쪽)

헤다야트는 인도에서 출간한 책의 필사본을 이란 친구들에게 전하면서 ‘이란 내 판매 금지’라는 주의 사항을 덧붙였다고 한다. 이란 당국의 검열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이다. 하지만 팔레비 왕조 시절인 1941년, 그는 일간지 ‘이란’에 이 작품을 연재하며 당국과 숨바꼭질을 벌였다. 팔레비 2세 즉위 이후에 새 시대 도래의 희망을 품었던 이란의 예술가들은 더욱 독해진 독재 속에서 절망하고 말았다. 헤다야트는 페르시아 문학을 서구적 형태로 새로이 발전시킬 꿈을 갖고 있었고 그 자신이 ‘눈먼 부엉이’를 통해 이미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시대는 그의 꿈에 부응하기에 아직 많이 낙후돼 있었다.

그는 작가로서 철저히 고립돼 갔다. 의욕을 상실한 그는 파리로 가기를 원했지만 그 희망은 1950년에 이루어졌다. 친구인 의사가 테헤란에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진단서를 써준 것이다. 그러나 그는 1951년 4월 스위스에서 체류비자 연장을 거부당한 뒤, 파리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생을 마감한다. 어떤 유서도 남기지 않았으며 죽기 직전 쓰고 있던 원고를 자기 손으로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사실 이 작품은 출간 80년 정도가 지난 현재도 이란에서는 금서(禁書)이다. 그러나 이란의 웬만한 독자라면 거의 다 이 작품을 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대한 작품은 당국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사이를 끊임없이 흘러다닌다. 배수아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