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프랑스군 한국전 참전협회 회장 “6·25 참전은 자유 수호 투쟁”

입력 2013-05-29 18:33 수정 2013-05-29 22:15


“프랑스 참전용사들은 6·25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며 한국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6·25참전용사들과 함께 한국을 찾은 패트릭 보두앙(60) 프랑스군 한국전참전협회 회장은 28일 “이번 방문을 통해 프랑스군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1954년 설립된 프랑스군 한국전참전협회는 현재 350명의 참전용사와 가족, 그 후손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으며 전국 8개 지회에서 자원봉사자 2500여명이 이들을 돕고 있다. 파리 인근 생 망데시 시장이기도 한 보두앙 회장은 “협회는 매년 추모사업과 참전용사 예우 행사 등 다양한 보훈행사를 통해 참전용사들과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다”며 “프랑스 참전군인들은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두앙 회장은 6·25전쟁에 참여했던 전임 회장으로부터 6·25전쟁의 정신을 젊은 세대들이 잊지 않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받고 2004년부터 협회를 이끌고 있다. 협회는 2007년 부산과 수원에 프랑스 참전용사 추모의 길을 조성하고 프랑스군이 싸웠던 곳에 전적비를 세우는 일도 해왔다.

당시 프랑스는 어려운 상황에서 6·25 참전 결정을 내렸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의 악몽과 폐허에서 간신히 벗어난 상태였고 인도차이나 등 옛 식민지에서는 독립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전쟁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유엔군 파병에 적극 동의했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군대를 파견키로 했다.

프랑스는 수송선 1척을 보내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한 데 이어 지상군을 투입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이뤄지기까지 지평리 전투, 화살머리고지 전투, 중가산 전투 등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총 3421명이 참전해 262명이 전사하고 1008명이 부상당했다. 보두앙 회장은 당시 프랑스에는 좌익 성향 사람들이 많아 부상당한 6·25참전용사들이 마르세이유항에 도착했지만 일부 시민들의 반대로 하선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며 “프랑스 참전용사들은 한국민들이 눈부신 발전을 해온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강조했다. 생 망데시가 속해 있는 발드마른지구 하원의원을 두 차례 지낸 그는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 의회 소속 북한연구위원회 부위원장도 맡고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