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발목 잡는 ‘슈퍼甲’ 국회

입력 2013-05-29 18:23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회에 발목 잡히며 동력을 잃고 있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법안들은 국회의 비효율적 논의구조, 여야 간 정치적 이해관계에 함몰되면서 표류하고 있다.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입법부와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할 행정부가 ‘국회 2중대’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여의도’에 묶인 국정과제=4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논의 과정은 비효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편의점 본사의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는 가맹사업법은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여야 합의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이어서 열린 정무위 회의에서 야당이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을 새롭게 들고 나오면서 지루한 공방이 다시 시작됐다. 이 법은 우여곡절 끝에 정무위를 통과해 법사위원회로 넘어갔지만 결국 본회의 처리는 무산됐다. 여야가 경제민주화 법안을 별개 사안인 지하경제 양성화 관련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FIU법)’과 연동 처리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6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이 통과돼야 집권 2년차부터 본격 추진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다. 하지만 여야는 요즘 ‘갑을(甲乙) 관계’에만 관심이 있다. ‘갑을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한 법률을 경쟁적으로 내놓을 뿐이다. 불평등한 갑을 관계가 경제민주화에 포함된 것이지만 정치권이 사회적 이목을 끄는 현안에 몰두하면서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산업 발전이라는 국정과제와 연관된 서비스업발전기본법은 지난해 7월 국회에 상정됐지만 지금껏 단 한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당초 이달 말 발표 예정이던 서비스업선진화 방안도 이 때문에 뒤로 미뤄졌다. 정부 관계자는 29일 “정부 정책은 결국 법인데 최근 국회 논의과정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시간이 지체되면서 정부 효과가 반감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회가 ‘슈퍼 갑’=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들은 공통적으로 “국회가 정부 정책 추진의 최대 적”이라고 성토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금은 입법부 만능시대”라며 “1980년대 정부가 법안을 내면 무조건 통과시켜주던 ‘통법부’ 시절도 문제였지만 지금처럼 행정부가 국회가 시키면 해야 하는 ‘집행부’로 전락한 것도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여기에다 국회의원의 잇따른 ‘호출’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과장급 이상 공무원들은 국회 출장이 주업이 되고 있다. 잦은 장거리 출장에 행정력은 낭비되고 있다. 또 다른 정부 고위관계자는 “국회가 ‘슈퍼갑’이라면 우리는 ‘슈퍼을’”이라고 한탄했다.

정부는 행정력 낭비를 막기 위해 세종시와 국회를 잇는 화상회의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지만 언제 시행될지 미지수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용하려면 국회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여야는 아직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시스템이 구축돼도 상임위원회 정식회의만 화상회의를 할 수 있을 뿐이라 국회의원이 개별적으로 이 시스템을 이용할 가능성도 낮다. 세종시에서 근무한 정부 부처의 한 간부는 “불러서 호통치기 좋아하고 살짝 민원도 끼워 넣는 국회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화상시스템을 이용해 공무원과 소통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백상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