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역형 일당, 개털은 5만원 범털은 5억
입력 2013-05-29 17:53
퀵서비스로 하루벌이 생활을 하는 김모(49)씨가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았다. 한 달 전쯤 업무방해 혐의로 선고받은 벌금 25만원을 내지 못해 수배된 상태였다. 술에 약간 취한 채 로비를 서성이던 김씨는 사정을 묻는 경찰관에게 “자수하러 왔다. 벌금 낼 돈이 없으니 유치장에서 몸으로 때우겠다”고 했다. 그는 서울남부구치소로 인계됐다.
박모(38)씨는 술을 마시고 행인을 때렸다가 부과받은 벌금 100만원을 내지 못해 지난달 7일 경찰에 붙잡혔다. 노숙생활을 하다 최근에야 노숙자다시서기센터의 소개로 월수입 43만원 청소일을 시작한 터였다. 그도 벌금 대신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 들어갔다. 구치소에서 하루 노역하면 벌금 5만원이 탕감된다. 100만원어치 노역 20일을 마치고 지난달 26일 출소했다.
노역장 유치는 벌금 못낸 사람들을 일정 기간 구치소나 교도소에 가두고 일을 시키는 처분이다. 노역 일당은 대부분 5만원으로 책정된다. 노상방뇨 등 경범죄의 경우 3만원이 책정되기도 한다.
지난해 노역장 유치는 3만5449건이었다. 2010년 3만7389건, 2011년 3만4361건 등 매년 3만5000명 정도가 벌금을 못내 몸으로 때우고 있다. 벌금 대상자 중 노역장으로 향하는 사람 비율은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2010년 3.00%에서 지난해 3.67%까지 증가했다.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일부러 벌금형을 선고받고 노역장에 가기도 한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노숙자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사건 하나 만들어 벌금을 받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노역을 시킬 시설이 마땅치 않아 거의 구치소 바닥에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역장 유치로 하루 수억원씩 벌금이 탕감되는 경우도 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2011년 세금포탈 등 혐의로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고 노역장에 51일 유치됐다. 하루에 5억원 정도를 탕감받은 것이다. 지난달 11일부터는 벌금 60억원을 선고받은 고물상 업체 대표 방모(48)씨가 하루 2000만원짜리 노역으로 벌금을 대신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노역장 유치 기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발생한다. 형법 69조에 노역장 유치기간이 ‘1일 이상 3년 이하’라고만 규정돼 있다.
벌금형은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구금하지 않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형벌이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에게는 사실상 징역형과 다를 게 없고 부자에게는 두렵지 않은 처벌이 되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벌금은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마련된 제도인데 경제적 불평등이 형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