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꽃제비
입력 2013-05-29 17:38
꽃제비는 북한에서 집 없이 떠돌면서 구걸하거나 도둑질하는 유랑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북한은 이들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고 북한 사전에도 올라있지 않다.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2001년 3월 발표된 북한의 장편소설 ‘열병광장’에는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시장바닥을 헤매는 집 없는 아이들을 꽃제비로 부르며 이 말이 이미 광복 시기부터 쓰였고 러시아어에서 변형됐다고 설명한다. 소련 사람들이 유랑자 혹은 유랑자들이 거처하는 곳을 일컫는 ‘코체브니크’, ‘코제보이’, ‘코제비예’라는 말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옮겼다는 것이다.
꽃제비의 제비가 ‘잡이’, ‘잽이’로 낚아챈다는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있고, 중국말로 거지를 뜻하는 ‘화쯔(花子)’에서 ‘꽃’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제비가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는데 빗대어 만든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집인 ‘최근 북한실상’과 ‘오늘의 북한소식’ 등에 따르면 식량난과 경제난이 심화되던 1990년대 중반부터 꽃제비가 급증했고, 주민들에 의해 ‘덮치기 꽃제비’ ‘쓰레기 꽃제비’ ‘매춘 꽃제비’ 등으로 유형화돼 불렸다. ‘노제비(나이든 거지)’ ‘청제비(젊은 거지)’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2009년 화폐개혁 이후 먹고살기 힘든 가정이 늘면서 며칠씩 굶다가 전 재산을 모두 헐값에 팔아 쌀을 사먹고 더 이상 팔 게 없어 집까지 팔고 꽃제비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LA타임스 기자 바버라 데믹이 청진 출신 탈북자 여섯명을 취재해 펴낸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Nothing to envy)’에는 “아이는 비에 흠뻑 젖은 채 땟국물을 흘리며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며 꽃제비 아이를 묘사하고 있다. 2010년 10월에는 토끼풀로 허기를 채우는, 앙상하게 마른 스물세살 여성 꽃제비 모습이 국내외 TV로 방송되고 두 달 뒤 이 여성이 굶어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국인 선교사 부부의 도움으로 지난 10일 중국 남부에서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가려다 라오스 경찰에 적발돼 억류돼 있던 북한 꽃제비 출신 청소년 9명이 그제 중국을 거쳐 북송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남북한은 이들이 라오스에 도착한 직후부터 이 사건을 인지하고 외교전을 벌였으나 라오스 정부가 북한 요청을 받아들여 이들을 강제 추방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이들을 다시 생지옥으로 돌려보낸 라오스 정부도 문제지만 도대체 우리 정부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한심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