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준동] 히딩크와 퍼거슨
입력 2013-05-29 17:49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 감독과 잉글랜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한국 축구의 자존심이라는 박지성을 발굴하고 세계적인 선수로 키운 거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히딩크는 어떻게 박지성을 발탁했을까. 히딩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 감독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이미 40편의 선수 비디오를 분석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임하자마자 당시 스타플레이어였던 이동국을 제외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지성을 과감하게 등용했다. 국내 축구계와 언론들은 의아해했다. 더욱이 히딩크는 월드컵 직전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0대 5 패배를 자주 당해 ‘오대영’이란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숨은 인재를 과감하게 발탁하고 그들의 재능을 극대화하는 그의 뚝심은 본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축구 강호들은 히딩크의 지휘 아래 다져진 한국 축구의 조직력을 넘지 못했다. 한 선수의 천재성에 의지하지 않고, 집단의 천재성에 공을 들인 그의 리더십은 결국 누구도 예상 못한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히딩크 감독을 이렇게 평가한 적이 있다. “연공서열을 무너뜨리고 인재 중심으로 선수를 기용한 히딩크의 지도력이 한국 4강 진출의 원동력이다. 나이와 이름보다 능력을 중시한 결과다.”
박지성 발굴·성장시킨 두 거장
히딩크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박지성을 발탁한 배경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는 “박지성이 근본적으로 실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지성은 목표를 향한 열정과 투지가 강했으며,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을 현명하게 찾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박지성의 놀라운 의지력이 어떤 성공사례를 불러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좋은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히딩크는 유망주에 불과했던 박지성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축구에 눈을 뜨게 했다.
히딩크가 박지성을 축구 스타의 길목까지 이끌었다면 퍼거슨은 박지성을 축구 중심으로 인도한 명장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그는 선수로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서른두 살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그만둔 퍼거슨은 스코틀랜드 리그 팀인 이스트 스털링 지휘봉을 잡고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1986년 맨유 감독에 부임한 그는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우직하게 밀어붙여 당시만 해도 중·하위권 팀이던 맨유를 재임 27년 동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 명문 가운데 하나로 키워냈다.
그들의 통찰력 본받아야
퍼거슨도 히딩크처럼 몇몇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지 않는 조직력 축구를 구사했다. 스타 선수라 하더라도 예외 없이 퍼거슨의 호통을 피할 수 없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바로 그 유명한 ‘헤어드라이어’다. 하도 선수 면전에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선수들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한다는 뜻에서 생긴 별칭이다. 스타 선수 한 명에 의존하기보다 팀 전체를 하나로 이끄는 데 주력하는 것이 퍼거슨의 축구 철학이다.
퍼거슨은 축구 감독을 하기 전 항구 근처에서 선술집을 운영한 적이 있다. 선술집 사장이었던 그가 21세기 최고 명장에 오른 비결은 바로 통찰력이다. 그의 끊임없는 관찰에 박지성도 포착된 셈이다. 퍼거슨은 히딩크를 따라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했던 박지성을 끊임없이 지켜봤고 결국 2005년 5월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품으로 데려왔다.
히딩크와 퍼거슨은 올해 나란히 은퇴를 선언하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인재를 알아보고 미래를 꿰뚫어보는 두 거장의 통찰력은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최적의 인재를 발굴하고 최고의 전략을 구상하는 그들의 통찰 리더십은 우리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대목이다.
김준동 체육부장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