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수현, 원작 바보와 싱크로율 100% “나를 놔버렸어요”

입력 2013-05-29 17:39


짙은 눈썹, 많은 표정을 담고 있는 눈, 도톰한 빨간 입술. 여심을 흔드는 외모에 가수 못지않은 빼어난 노래실력. 여기에 연기력까지. 김수현(25)은 분명 그 또래 최고의 기대주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해품달)’ ‘드림하이’, 영화 ‘도둑들’로 여심을 설레게 했던 그가 6월 5일 개봉하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로 관객을 찾는다. 그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다. 달동네 슈퍼마켓 바보(방동구)로 위장한 북한 최정예 스파이 원류환 역이다. 요즘 가장 ‘핫’한 배우 김수현을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기와 인기 모두 한창 물오른 배우=작가 HUN의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그 자체로도 화제작. 달동네 바보가 사실은 북한 최고의 스파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조회 수 2억5000만뷰를 기록한 인기작이다. 남한의 달동네에 잠입한 북한 스파이들을 통해 가족과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이 웹툰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모든 이들의 관심은 주인공 동구에 쏠렸다. ‘1일 3회 이상 1인 이상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실감나게 넘어질 것. 2인 이상이 보는 노상에서 6개월에 1회 큰일을 볼 것.’ 이런 지령을 누가 천연덕스럽게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시사회로 먼저 만난 김수현표 동구는 웹툰 주인공과 싱크로율 100%. 사계절 한결같은 초록색 트레이닝복과 덥수룩한 더벅머리. 걷다가 뜬금없이 넘어지고 동네 꼬마들에게 맞아도 실없이 헤헤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바보다. 그러면서도 고도의 훈련을 받은 최정예 스파이를 오가는 폭넓은 연기를 펼친다.

“처음에는 원작을 편하게 웃으면서 보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빠져들게 됐어요. 마지막에는 내가 울고 있더라고요. 굉장한 작품이구나 생각했지요. 가볍게 보다가 나중에 감동을 받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망가지는 게 겁나진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특히 노상에서 큰일 보는 장면이 그랬지요. 원작에는 몇 컷으로 표현되는데 이걸 영화로 재생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자세가 나왔을까 동선을 짜고 연구 했어요.”

바보 연기는 편했다. “연기라는 틀 안에서 굉장히 용감해질 수 있었지요. ‘이건 연기이니까’ 하고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나를 놓았어요. 코를 흘리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나를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바보 캐릭터는 다름 아닌 ‘텔레토비’에서 따왔다. “‘해품달’ 때 이훤은 삼국지의 조조에서 가져왔고요, 동구는 연구하다보니 텔레토비가 생각났지요.”

몸을 사리지 않은 바보 연기,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한 액션, 동구에서 스파이 류환으로 돌아갈 때마다 짐승처럼 바뀌는 눈빛.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아쉬움이 있단다. “후반부 옥상 빗속 액션신이 있어요. 뜨거운 물을 뿌리면 김이 날까봐 한겨울에 얼음같은 비를 맞으며 찍었지요. 몸이 굳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마음처럼 액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계절 냄새를 음미하는 스물다섯 청년=촬영이 끝난 후 지난 3월 학교에 복학했다.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2학년이다. “학교 강의실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연기할 때처럼 용감해집니다. 휴식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촬영장에는 또래 친구들이 없는데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다니니 안정된 느낌이지요.”

김수현은 에너지가 넘친다. 개구쟁이이고, 최근 SBS ‘런닝맨’에서 보여준 것처럼 달리기를 잘한다. 공부하는 거 안 힘드냐고 했더니 바로 대답이 나온다. “힘들죠. 중간고사를 봤는데 그 자리에서 감상문을 제출하는 거였죠. 그런데 교수님이 제 글씨를 못 알아보겠다고 하시던데요. 하하.”

드라마 ‘해품달’로 스타덤에 오르고, 바로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주연을 맡았다. 갑자기 정상에 확 올라와 어지럽진 않을까. “‘해품달’ 이후 많은 사랑을 받게 됐는데 당시는 되게 무서웠어요. 한동안 겁이 많았지요. 특별한 일 아니면 밖에도 못나갈 정도였어요. 혼자 모자 푹 눌러쓰고 나갔다가 집에 오면 목이 아플 정도였죠.” 그때 느꼈다. 내가 너무 과하게 행동하는구나. 생각을 바꿨다. ‘내 존재 자체를 비밀로 해야지’에서 ‘주변에 피해만 안 주겠다’는 정도로. 그 이후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냄새 맡는 걸 좋아한다. “며칠 전에 계절 냄새가 바뀌었어요. 공기가 미지근해지면서 여름 냄새가 나던데요. 조용한 곳에서 향을 음미하고 있으면 평화가 오는 느낌이랄까. 오늘 아침엔 비 비린내가 나던데요.” 오, 알고 보니 섬세한 남자다.

연기에 지친다는 생각은 안했을까.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었죠. 공부하다 보니까 산 넘어 산이에요. 이젠 목표를 잘게 쪼개서 잡아요. 이번 목표는 이 놈(이 캐릭터)이구나, 그렇게 만족을 찾아갑니다.”

요즘 여러 시나리오를 보고 있다. “지금은 도전자의 입장입니다. 아직은 내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 못해서 실패해도 되니까 도전해보자는 생각이에요. 여러 색깔 도전해서 쓸 수 있는 카드를 여러 장 모아 두고 싶습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