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중·일·러 신뢰쌓아 북핵차단·역내평화 새판짜기
입력 2013-05-29 03:54
정부의 동북아 다자안보 기구 추진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서울 프로세스’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한 다목적용으로 풀이된다. 지금 당장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반드시 추구해야 할 박근혜정부의 장기 외교 구상이다.
북한 핵과 한·중·일 간 영토분쟁, 미·중 간 군사적 긴장 등 역내 안보 문제에 대한 근본 처방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북아 역내 국가 간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는 상시 대화 틀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박 대통령은 이달 초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북아 국가들은 서로 경제와 인적 교류 분야에서는 협력할 필요를 느끼면서도 안보·정치 사안만큼은 유독 협력을 회피하는 ‘아시아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인도적·비정치적 사안부터 안보·정치 사안으로 협력 범위를 점차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동북아의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다자기구’ 구상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처음엔 별다른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태평양으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에 대해 항상 우려 섞인 시선을 던져온 미국이 중국과 함께 같은 테이블에서 민감한 안보 사안을 논의한다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배경과 전망을 상세히 설명하자 오바마 대통령도 공감을 표시했다.
박 대통령은 6월 하순 중국 방문에서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 것처럼 설득작전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도 처음부터 서울 프로세스 구상에 선뜻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역내 평화체제 구성이라는 원칙에는 반대할 명분이 없어 보인다.
정부는 미·중으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면 새 다자기구를 만들기 위한 나머지 노력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 역시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핵 위협의 최대 당사자인 한국이 다자기구를 주도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관련국들이 반대하기 쉽지 않다.
일단 한·미·중·일·러 5개국이 참가하면 회원국 간 신뢰를 쌓는 협력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대북(對北) 공동 대응의 토대가 생기게 된다.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북한을 회원국으로 견인하는 다음 과제로 넘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역내 공동안보·공동평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원천 차단이라는 궁극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도 해결책을 찾겠다는 의지다. 북한 내부 인권 문제는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중국으로 유입되는 탈북자들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공동 인권보호 같은 사안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동북아 다자안보 기구가 실현되면 한국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리더로 부각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남북 갈등의 당사자이면서도 갈수록 격화되는 중·일 간 영토분쟁과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을 풀어낼 수 있는 ‘완충자’ 역할을 맡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