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탈세 전쟁과 고객보호 사이… 시중銀, 컨설팅 받는다
입력 2013-05-28 19:02 수정 2013-05-28 22:26
국내 시중은행들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하경제와의 전쟁’에 이례적으로 공동 대응하고 나섰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 등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국 정부가 글로벌 금융기관에 대한 강도 높은 압박에 나섰기 때문이다. 잦아지는 금융거래 내역 제출 요구, 보고 의무 강화 등에 대처해 보호해야 할 고객과 정부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잡겠다는 의도다.
특히 우리 시중은행의 최대 거래국 중 하나인 미국이 지난 1월 ‘해외 계좌 납세 순응법(FATCA법)’을 만들어 내년부터 해외은행의 보고 의무를 강화한 것이 계기가 됐다. 국내 은행은 유례없이 강도가 높은 이 법을 ‘깡패법’이라 부르면서 그동안 대응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지난 27일 이사회를 열고 FATCA법 발효 등에 따른 컨설팅 계약 건을 의결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컨설팅 계약은 모두 42억5000만원 규모로 법무법인 광장 컨소시엄이 따냈다. 컨설팅 계약에는 14개 시중은행이 참여 의사를 밝혀 각자 분담 비율에 의해 사업비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광장과 세계 5위권인 영국 로펌 DLA파이퍼(DLA piper), IT솔루션 업체인 LG CNS가 참여했다. 광장은 주로 국내 은행의 법률 대응을, DLA파이퍼는 해외 각국의 동향과 해외 은행의 대응사례 등을, LG CNS는 이에 따른 전산개발 작업을 맡게 된다.
컨소시엄은 약 3개월 안에 시중은행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출하게 된다. 가이드라인에는 은행이 취해야 할 전반적인 입장, 개별 사례에서 각국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관련 기조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고객을 보호하는 방안 등이 담길 전망이다. 어디까지 고객 정보를 제공하고, 얼마나 고객을 보호할 수 있는지 기준점을 찾고 나선 것이다.
FATCA법은 미국인 또는 미국인이 설립한 법인과 거래하는 금융기관은 일정금액 이상의 거래 내역을 모두 미 국세청에 신고토록 하고 있다. 미국인(기업)의 역외 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 1월 법안이 확정돼 내년 1월 시행된다.
최근 해외 진출을 적극 시도하고 있는 시중은행들은 이번 컨설팅 계약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에 대한 대응방안을 수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미국이 자국 은행들에나 적용할 만한 법을 해외 은행들에도 적용키로 해 그동안 고심해 왔다”며 “이번 기회에 역외탈세를 막으려는 각국 정부 기조에 대한 포괄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각국 정부는 지하경제와의 전면전을 진행 중이다. 한국조세연구원 최성은 연구위원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 해외동향’에 따르면 그리스는 2011년 영수증 발급 의무화 등을 담은 ‘탈세방지를 위한 국가기본계획’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사업장에서 영수증을 내주지 않으면 소비자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스페인은 지하경제의 주범으로 꼽히는 현금거래의 한도를 2500유로로 제한하는 ‘2012 조세관리 계획안’을 내놨다. 스페인 국세청은 이런 조치로 2012년도 세입이 전년보다 115억2000유로(10.1%) 늘었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2011년 스위스와 역외탈세방지조약을 맺고, 스위스 정부가 영국 납세자의 세금 원천징수를 대행키로 합의했다. 호주 국세청은 금융기관들이 이자 지급 관련 자료를 자동으로 국세청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주요국 중 가장 광범위한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