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복지, 관료체계부터 정비를

입력 2013-05-28 17:33


복지가 한국사회의 화두가 된 것은 분명하다. 2011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대선에서 중요한 논쟁의 초점은 바로 복지에 있었다. 세세한 의견차이는 있을지라도 복지가 시급하다는 인식은 보수 진보 모두 인정한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

첫 번째 논점은 ‘재원조달’과 관련된 것이다. 구매력평가(PPP)로 계산한다면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1년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이 2만9920달러로 영국(3만5950달러) 프랑스(3만5910달러) 일본(3만4670달러)과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복지 격차는 아주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의 복지지출 규모와 이를 뒷받침할 국민의 부담률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정부 또한 지하경제 양성화와 경제성장률 제고만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증세가 필요하나 경기침체기에 함부로 꺼낼 카드가 아닌 고충은 충분히 이해한다.

두 번째 논점은 한국 복지체계의 ‘기형성’과 관련된 것이다. 한 나라의 복지체계를 기초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로 나누어 본다면 한국은 과도하게 ‘사회서비스화’되어 있다. 노령연금,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부담 등과 같이 ‘보편성’을 강조하는 곳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육, 간병 등 각종 사회서비스 정책은 우리의 부족한 예산을 보충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경우 정책이 너무나 복잡해진다. 취약계층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판단해야 하며 그것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거대한 관료체계의 유지와 행정비용을 수반하게 된다.

더욱 곤혹스러운 점은 복지가 강조될수록 거의 모든 부처가 엇비슷한 일들을 벌인다는 것이다. 취약계층 집수리 사업 하나만 하더라도 유사한 사업이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로 나뉘어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던 사회적기업 예산도 2012년 고용노동부의 예산은 1760억원이지만 보건복지부의 자활사업(5333억원), 안전행정부의 마을기업(200억원) 등 유사한 정책은 다른 부처에서도 실시된다. 청년 일자리 창출, 다문화정책 등 뒤져보면 부처들마다 유사한 정책투성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중앙정부의 영향을 받아 주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친다. 일부 지역의 경우 단체장의 재선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이 중앙정부의 것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제 선택해야 할 방식은 두 가지다. 중장기적으로는 증세를 통한 복지예산 확보가 그 첫 번째다. 물론 대대적인 조세저항, 거시경제적 충격을 감안한다면 단기적으로 해결할 과제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기존의 복지를 효율화시켜 가는 것에 있다. 효율화시킨 이후 증세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과거 한국의 우수한 관료체계는 우리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세계은행의 대대적인 보고서였던 ‘동아시아의 기적’(1993)에서 한국의 산업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우수한 관료체계가 강조된 바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의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 담론’도 결국은 효율적인 관료체계에 대한 강조와 연관된다. 이렇듯 국제적으로 본다면 한국의 관료는 상당한 칭찬의 대상이었다.

필자 또한 여전히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도 부처 간 벽을 허문 과감한 복지전달체계 재정비가 요구되나 과문한 탓인지 별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중앙부처의 중복 행정이 복지행정의 말단인 사회복지사에게 부과되어 ‘사회복지사 자살’ 같은 사회문제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새 정부가 출발한 지 며칠 후면 100일, 이제 보여줄 만도 한데 아직까지는 오리무중이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