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전별금

입력 2013-05-28 17:33

형법 129조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된 뇌물을 받았을 때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돈을 받기로 약속하고 일을 처리했을 때는 131조에 따라 사후수뢰죄로, 다른 공무원에게 일처리를 부탁해줬을 경우에는 132조에 근거해 알선수뢰죄로 처벌한다. 받은 돈이 3000만원을 넘으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된다. 뇌물액이 1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매우 엄한 처벌이다.

하지만 모든 법에는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엄격한 수뢰죄도 피해가는 방법이 있다. 바로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다. 공무원이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았어도 그의 일과 관련됐다는 증거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전별금이다.

본래 전별(餞別)은 떠나는 사람을 위해 잔치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정을 쌓았는데 갑자기 떠나게 됐으니 식사를 같이하며 아쉬움을 달래자는 취지다. 밥만 먹어서는 충분치 않아 여비도 챙겨준다. 그 옛날 맹자도 송나라를 떠나면서 거액의 전별금을 받았다니 무척 오래된 전통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또가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때 마을 유지들이 돈을 모아 건네는 것이 관행이었다. ‘미풍양속’은 계속 이어져 5공화국 시절 전두환 대통령은 비서관에게 전별금 5억원을 줬다는 소문도 돌았다. 공직사회, 언론계는 물론 일반 기업과 교육계 등 사회 전 영역에서 전별금의 뿌리는 깊었다.

그러나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 이후 전별금은 본격적으로 뇌물과 똑같이 취급됐다. 그 전에도 전별금과 명절 떡값의 폐해가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현직 검사 28명이 대검찰청에 소환되고 검사장 2명을 포함해 검사 6명이 사표를 내는 것을 보면서 공직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잘못 받았다가 인생 망친다는 인식이 확 퍼졌다.

며칠 전 책상서랍에 700만원이 든 봉투를 넣어둔 검사가 적발돼 전별금 논란이 다시 일었다. 잊을 만하면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잘못된 관행이 사라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한번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 어떤 명목으로든 공무원이 돈을 받을 경우 처벌토록 하는 ‘김영란법’을 원안대로 입법하는 것이다.

그렇게 법이 만들어지면 기소된 공무원이 받은 돈이 전별금이냐 뇌물이냐를 놓고 재판부가 고심할 필요가 없다. 머리 아프게 직무 관련성을 따질 이유도 없다. 지금은 누구라도 ‘전별금=뇌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김영란법을 바꾸려고 하니 이유가 궁금하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