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역학학회장 한세준 교수 “자궁암 환자들도 정상적으로 아기 낳을 수 있어”
입력 2013-05-27 20:14
2010년 8월 2일 밤 1시 12분. 경남 창원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민호(가명)씨는 한세준(사진) 조선대학교 의과대학(산부인과학 교실) 교수에게 가슴 아픈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낸다.
당시 김씨의 아내(36)는 자궁내막암 초기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아내는 2003년 결혼한 이후 몇 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아 지방의 한 산부인과를 다니던 중 뇌하수체 선종 판정을 받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제거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이후 아내의 생리가 멈췄다. 김씨와 아내는 급한 마음에 서울의 S 산부인과를 다녔고, 아기를 갖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차례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다. 그런 사이 아내는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게 된다. 병원 의료진의 소견으로는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높은 간 수치와 당뇨 등으로 아내의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약물 시술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김씨로서는 아내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 최우선이었지만 자식을 얻는 것 또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김씨에게 아내의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는 의료진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슬픔에 빠진 김씨 부부는 수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그러던 중 김씨는 한 교수의 광역학을 활용한 부인과 시술 사례를 신문기사로 접했고,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한 교수에게 위의 사연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게 된 것이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다= 3개월 후, 한 교수의 광역학 치료 덕분에 김씨의 아내는 완치 판정을 받는다. 아울러 임신에도 성공해 2011년 9월, 37주 만에 딸 쌍둥이를 출산했다. 김씨는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한 줄기 빛이 우리 가정을 살렸다. 우리나라 최고를 자부하는 병원들도 아내의 상태를 보고서는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고 했었는데…”라며 지옥 같았던 1년을 회고했다.
한 교수의 책상에는 이 같은 사연이 담긴 이메일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환자들까지 보내온 것들이다.
환자들의 고민 대부분 “누가 젊은 나이에 암을 의심하겠느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아직 젊은데 아기는 가질 수 있느냐”는 것 등이다.
사연을 접할 때마다 한 교수는 “젊은 부부에게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만큼 비극적인 것도 없다”며 안타까움을 함께한다.
한 교수에 따르면 자궁암은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질환이었으나 점차 그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40세 이전의 젊은 가임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자궁암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이던 것이 최근에는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궁암의 주치료술은 수술이나 방사선 요법이다.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는 여성의 생식기를 보장할 수 없다. 이는 환자들 대다수가 자궁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한 번 울고,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울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의료진은 자궁암 환자들에게 “양쪽 난소를 모두 제거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 수밖에 없다”는 소견을 내놓는다. 여성으로서의 삶은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교수는 “여성들이 부인과암에 걸렸을 경우 가임력을 보존하기 위해 수술보다는 황체호르몬 요법을 쓰기도 하지만 그 역시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자궁암 치료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광역학 치료법이다. 한 교수는 1990년대부터 광역학을 이용한 부인암 치료를 연구해 왔다. 당시 빛과 광과민물질 그리고 산소만으로 부인암을 치료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광역학을 이용해 조기암과 재발암 방사선 치료에 저항하는 광범위한 침범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한 사례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자궁을 들어내지 않고도 자궁암을 치료했다는 사례들은 젊은 여성 환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나 마찬가지였다.
◇고통 없이 종양부위만 선택적으로 제거= 한 교수가 말하는 부인과질환에서의 광역학 치료란 기존의 암 치료(수술 방사선 항암화학요법)와 달리 고통 없이 종양부위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시술이다. 현재 다른 질환에도 폭넓게 적용을 하고 있는 광역학 치료는 특히 부인과질환에서는 획기적이다. 고통 없이 종양을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어 자궁과 생식기능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치료 중 출혈과 통증이 없기 때문에 마취가 필요 없으며 치료부위에 흉터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아 미용에도 탁월하다.
한 교수는 “부인과질환에 걸려 절망에 빠진 여성들에게 광역학 치료만큼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것도 없다”며 “이는 수년간의 환자 진료사례와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광역학학회 회장이기도 한 한 교수는 학회 학술대회에서 ‘생식기능 보존을 원하는 젊은 여성의 자궁암 환자에서 광역학 치료 후 출산에 성공한 임상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연구에서 한 교수는 자궁경부암과 내막암에 걸려 조선대학교병원에 내원하는 27세에서 29세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자궁 및 생식능력을 보존하면서 종양부위만 제거하는 광역학 치료를 실시했다. 그 결과 최종 추적 검사일까지 모두 음성 소견을 보였다. 또 자궁경부암 환자들은 광역학 치료 후 47개월과 43개월 만에 만삭 정상질식 분만과 제왕절개를 통해 정상아를 출산했다. 자궁내막암 환자들도 정상아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
한 교수는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접해본 결과 광역학 치료는 부인과 질환에 있어 획기적인 방법”이라며 “향후 좀 더 많은 임상증례와 장기적인 평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광주=조규봉 쿠키뉴스 기자 ckb@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