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의 외국인 투자자들, 국내 회사채 유독 많이 보유, 왜
입력 2013-05-27 18:36
외국인 투자자 가운데 조세피난처에 있는 투자자들이 유독 국내 회사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의심되는 이들 투자자는 국내 상장채권 전체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회사채만큼은 국내에 투자한 전 세계 외국인 투자금액의 30∼60%를 보유 중인 ‘큰손’이다. 금융권은 기업들이 세금 없이 해외에 자금을 빼돌리는 통로로 회사채를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회사채 ‘큰손’ 조세피난처=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케이맨제도에서 국내 증권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말 현재 1800억원의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외국인 투자자의 회사채 투자액(5980억원) 중 30.1%에 해당하는 수치다. 케이맨제도의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에 투자하는 전 세계 외국인의 7.7%인 2796명이고, 이들이 국채나 지방채를 포함한 국내 상장채권 전체에서 보유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케이맨제도의 국내 회사채 보유량은 특히 지난해 급증했다. 2008년에는 2116억원(62.9%)을 보유했다가 점진적으로 처분하고 2011년에 622억원(11.6%)까지 비중을 줄였다. 그러다가 지난해에 1200억원 가까이 보유량을 늘린 것이다. 지난해 전 세계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회사채 보유량은 612억원가량 늘어났을 뿐이었다. 케이맨제도를 제외하면 회사채 보유량이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다른 조세피난처의 외국인 투자자들도 회사채의 보유 비중이 다른 채권보다 높은 편이다. 유럽의 대표적 조세피난처 국가인 룩셈부르크 투자자들은 2008년 전체 국내 상장채권의 보유 비중이 5.3% 정도였지만 회사채는 12.9%를 차지했다. 2009년 홍콩 투자자들도 상장채권 전체로는 보유 비중이 6.1%였지만 회사채는 9.5%를 갖고 있었다.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의심받는 조세피난처의 외국인 투자자들은 증가 추세다. 지난달 말 현재 금감원에 등록된 외국 집합투자기구 211곳 가운데 케이맨제도의 펀드는 절반에 육박하는 90곳(42.7%)이다. 룩셈부르크가 34곳, 버진아일랜드가 7곳, 홍콩이 4곳이다.
◇그들이 회사채를 보유하는 이유=외국인 투자 등록을 받는 금감원은 조세피난처의 외국인 투자자가 검은머리 외국인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떳떳한 돈이 없는 조세피난처에서 유독 국내 법인에 대한 회사채 투자와 거래 비중이 높은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금융권은 케이맨제도에서 회사채 투자가 활발한 배경에 기업들이 검은머리 외국인을 동원해 탈세를 하는 관행이 숨어 있다고 본다.
단순한 비자금 조성이 아닌 다양한 목적으로 회사채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형태로 발행된 경우 해외 법인이 투자한 것처럼 돌려뒀다가 유사시 경영진이 자신의 지분으로 내세우며 경영권 방어에 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