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원 들인 ‘세이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입력 2013-05-27 18:34
한국의 30대 젊은 감독이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6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제66회 칸 영화제 폐막식에서 문병곤(30) 감독의 ‘세이프(Safe)’가 단편 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받기는 처음이다. 이 부문에서는 1999년 송일곤 감독의 ‘소풍’이 심사위원상을 받은 게 유일하다.
문 감독은 폐막식에서 첫 순서로 시상하는 단편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다. 수상을 예상치 못하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상장을 받아들고 활짝 웃었다. 문 감독은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작품인 단편 ‘불멸의 사나이(Finis Operis)’로 2011년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받은 데 이어 두 번째로 칸에 입성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3분 분량의 ‘세이프’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 환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이 가불금을 갚기 위해 돈을 빼돌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신영균문화재단 후원 공모에서 선정돼 500만원을 지원받고, 자비 300만원을 들여 총 800만원으로 만들었다. 제목 ‘세이프’는 안전하다는 뜻과 함께 돈을 보관하는 ‘금고’의 의미를 갖고 있다.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꼬집은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감독은 수상 직후 한국 기자들과 만나 “상을 받게 될지 정말 몰랐다. 영화제 개·폐막식 참석을 위해 턱시도를 처음 장만했는데, 턱시도를 산 보람이 있어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은 ‘노 모어 커피 브레이크’(2008) 등 단편 3편이 전부다. 이 가운데 2편이 칸에 초청돼 최고상까지 거머쥐는 놀라운 성취를 보여줬다.
할리우드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심사위원장으로 폐막식을 지휘하는 가운데 전 세계 최정상급 영화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상을 받던 순간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무대에 올라가서 상을 받는 그 짧은 시간 엄청나게 떨리고 눈앞이 하얘진 느낌이었어요. 상을 받은 뒤엔 어디로 내려가야 하는지 몰라서 사회자인 오드리 토투(프랑스 배우) 앞으로 지나갔죠. 사람들이 막 웃더라고요.”
문 감독은 이번 수상의 의미를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는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괜찮은 동기가 생겼다는 게 가장 행복하다. 상을 받았으니 앞으론 지금까지 한 것의 몇 배로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