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오너 잡는 ‘前 직원 협박 편지’

입력 2013-05-27 18:13

CJ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재현 회장의 옛 자금관리인이 쓴 편지가 중요 단서가 됐다. 과거 여러 기업 비리 수사 때도 퇴직 직원들이 경영진에게 보낸 협박성 글이 수사의 단초가 되거나 비자금 실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2005년 4월∼2007년 4월 이 회장의 이른바 ‘기타 명의 주식관리 업무’를 맡았던 이모(44) 전 재무2팀장은 비자금 관리 사고로 퇴사한 뒤 복직을 요구할 목적으로 이 회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검찰이 압수해 복원한 USB 메모리에는 이 회장의 국내 차명 재산 관리 파일, 서미갤러리 측과의 미술품 거래 내역 등이 함께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씨는 이 회장에게 “수사기관에는 이 내용을 알리지 않겠다”는 내용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삼성특검 때도 협박편지가 등장한다. 삼성증권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 퇴사한 박모(47)씨는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 폭로 이후 경영지원본부장 등 회사 간부들에게 “본사 전략기획실에서 현금을 받아 내가 직접 차명계좌를 만들어 관리했다. 5억원을 주지 않으면 외부에 비자금 자료를 넘기겠다”는 내용의 글을 여섯 차례 보냈다. 100여개 차명계좌 리스트도 첨부했다. 협박편지는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가 삼성증권 감사실을 압수수색할 때 발견됐고, 이후 특검팀이 차명 재산 전반을 파고드는 단초가 됐다. 특검팀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삼성증권 전 직원의 협박 메일을 단서로 해서 전략기획실이 차명으로 관리하는 자료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구속으로 이어진 파이시티 수사도 협박편지가 결정적 단서가 됐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건넨 건설업체 대표 이동율씨의 운전기사가 최 전 위원장에게 보낸 협박편지 사본과 돈다발 사진을 확보하면서 ‘MB정부’ 최고 실세의 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27일 “오너가 직속 기구를 통해 임직원 명의로 자신의 차명 재산을 관리하는 구조가 화를 자초한 것”이라며 “실제 명의를 빌려줬던 일부 직원들이 퇴직 후 차명 재산을 돌려주지 않는 등의 사고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