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 정도 대책으로 농산물 가격 낮출 수 있겠나

입력 2013-05-27 17:36

역대 정권마다 민생고를 덜어주겠다며 내세웠던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농수축산물 가격안정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배추국장’ ‘무국장’ 등 품목별 담당관까지 두고 농산물 가격을 잡겠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농산물 가격안정을 중점과제로 삼아 획기적으로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정부가 어제 발표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대책을 보면 이 정도 대책으로 농산물 가격을 10∼15% 낮출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통단계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산지에서 1000원도 안 되는 배추값이 농가→산지수집상→중간도매상의 전매→도매시장→납품 도매상→소매상 등 6∼7단계 유통구조를 거치면서 5∼6배 가격이 뛴다. 산지 소값이나 돼지값이 폭락해도 소비자들이 가격인하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역시 중간 상인들의 폭리 때문이다.

농민들은 애써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게 없다며 밭을 갈아엎고, 소비자들은 비싼 장바구니 물가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반면 중간상인들만 배를 불리는 게 우리 현실이다. 유통비용이 소비자가격의 50∼70%를 차지하는 것은 누가 봐도 기형적이고 잘못됐다.

생산자가 농산물을 제값에 팔고, 소비자는 더 싸게 살 수 있는 해법은 유통단계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정부는 도매시장, 직거래, 농협 같은 생산자단체 등 유통경로 간의 경쟁을 촉진시켜 유통구조의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자발적 경쟁만으로 유통단계가 줄어들지 의문이다. 이미 대형마트들이 산지와의 직거래를 통해 거품을 뺀 일부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미끼’ 상품에 그칠 뿐 가격인하가 전 품목으로 확산되진 않고 있다. 유통단계를 대폭 줄이지 않으면 농산물 가격인하는 요원할 뿐이다.

농협을 통해 산지 공동출하조직을 육성하고 5개 권역에 도매 물류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동안 돈벌이에 치중했던 농협은 신용(금융)과 경제 분리가 이뤄진 만큼 지금부터라도 농민들의 농산물 출하와 판매를 돕는 사업에 매진해야 한다. 미국의 선키스트(Sunkist)나 네덜란드 그리너리(Greenery)처럼 농협이나 영농법인이 산지 유통조직을 만들어 소매상이나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는 것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경매 위주로 거래되는 도매시장에서 정가·수의매매 비중을 현재의 8.9%에서 2016년 20%로 확대해 시장경쟁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단기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하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도매시장과 산지와의 가격담합 가능성으로 농산물 가격이 오히려 오를 수 있는 만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