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한국판 ‘복지의 사회화’

입력 2013-05-27 17:29

‘복지의 사회화’라는 말은 유럽에서 먼저 나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이 상징하는 것이다. 나라가 부강하고 안정될수록 육아 보육 교육 의료 노후보장 등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복지관련 지출을 개인과 가정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일찍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1950∼60년대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61년 전체 국민 대상의 국민연금제를 도입했고, 73년에는 아동수당제와 65세 이상 노인의료무료화 등을 실시했다. 당시 일본은 유럽식 ‘복지의 사회화’가 정착됐다며 73년을 ‘복지원년’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노인의료무료화제도는 도입 10년 만인 82년 폐지된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로 더 이상 감당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이후 노인의료보험 재정문제는 고령사회, 초고령사회의 진전과 함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연금제도는 아직까지 비교적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다. 일부 연금사각지대에 놓인 이들도 있지만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는 연금제도는 일본의 부모자식 간 위상에 적잖은 변화를 낳았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현역 자녀가 은퇴한 부모에게 매월 생활비나 용돈을 드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연금이 있으니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 왕래도 그리 많지 않다. 동양사회에서는 노인봉양이 으뜸의 덕목이지만 ‘노후부담의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부모자식 관계가 건조해지고 있는 셈이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고독사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56세 이상의 노년층이 자녀 등에게 받는 사적(私的)이전소득은 2010년 연평균 133만8000원인 데 비해 국가로부터 받는 공적 이전소득(노령·국민·공무원연금 등)은 연 258만4000원으로 훨씬 많다. 2008년 기초노령연금 도입으로 공적 이전소득이 늘어난 반면 사적 이전소득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인복지의 사회화’ 현상을 기뻐해야 할까.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우선 사적·공적 이전소득 규모가 너무 적어 노후보장수준이 못되기에 이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더 중요한 것은 복지제도가 겨우 걸음마단계인데 벌써부터 국가에 모든 것을 전가하는 분위기가 만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람직한 부모자식 관계를 감안해서라도 유럽식 ‘복지의 사회화’보다는 당사자·자식(가족)·국가가 함께 힘을 모아가는 한국판 ‘복지의 사회화’가 더 바람직하겠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