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직적 증거인멸에 나섰다는 의심받는 경찰

입력 2013-05-27 17:35 수정 2013-05-27 21:36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의혹 사건이 경찰의 증거인멸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국가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충격에 이어 경찰 수뇌부가 수사방해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더니 이제는 현직 경찰 간부가 수사관련 자료 삭제를 시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권력기관의 국기문란 행위가 근절되기는커녕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의혹 사건의 실체를 밝혀줄 증거분석 자료를 삭제한 것은 사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인멸한다면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한다는 헌법적 원칙은 존립하기 어렵다. 자료를 삭제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증거분석팀장은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프로그램을 실행하다가 실수로 데이터가 지워졌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구차한 변명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당 팀장이 사용한 프로그램은 지정된 파일 위에 다른 데이터를 덧씌우고, 파일 이름을 반복해 변경하는 방식으로 자료를 삭제한다. 키보드를 한 두 차례 잘못 입력했다고 자료가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이 그는 지난 2월부터 증거분석팀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지난해 12월 발생했던 수사 축소·은폐 의혹 사건에 개인적으로 관련돼 있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의도적으로 증거인멸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서울경찰청은 해당 팀장의 개인 컴퓨터에는 관련 자료가 아예 없어 조직적 자료 파기는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결백하니 믿어 달라”는 식으로는 경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어렵다. 당초 경찰과 아무 관련이 없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에 끼어들었고, 이후 엄정한 진상조사 대신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화를 키웠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해 경찰간부가 증거인멸이라는 의심을 사게된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경찰은 스스로 의혹을 조사해 규명하고, 뼈를 깎는 자정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