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창환 (14) 목회자 윤리문제, 신학생 때부터 바로잡아라
입력 2013-05-27 17:26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줄곧 제기하는 문제가 목회자의 도덕과 윤리다. 듣기조차 민망하고 부끄러운 목사들의 추문이 매스컴을 타고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믿지 않는 자들이 조롱 섞인 비난을 퍼붓는 것을 보면 ‘목사의 권위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추락했을까’ 탄식만 나올 뿐이다.
한평생 신학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목사의 윤리 문제에 앞서 예비 목회자인 신학도들의 윤리 문제를 먼저 얘기하고 싶다. 서울 남산 장로회신학교 시절(1948∼1950), 의자나 책상도 없이 다다미 방에 앉아 공부했지만 소위 ‘커닝’이라고 불리는 시험부정행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부산의 임시 교사에서 강의가 이뤄지던 때로 기억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이 남의 답안지를 베껴가면서 시험을 치르는 게 아닌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통에 살아남기 위해 속이고 거짓말을 해야 했던 습성이 신앙인들에게도 익숙해진 것 아닐까 해서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1954년 1차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학생들의 시험부정행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에게 적발된 학생 중에는 1년간 정학처분을 받은 이들도 있었다. 한번은 졸업반 학생 200여명이 과제물을 제출했는데, 30여명 것이 똑같았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낙제 점수를 줬다.
미국 콜롬비아신학교에서 1년간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1988년 가을학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기말 시험 때였는데, 학생 중 절반 가까이가 커닝을 하고 있었다. 답답하고 허탈했다. 이들이 목사가 돼 교회와 양떼들을 이끈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어찌 되겠는가. 잘못을 저질러도 눈감아주고 쉬쉬하며 덮어버리다 이 지경까지 온 게 아닌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목회자들의 윤리적 비행도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다. 제자 중 하나였던 K목사는 일찍 결혼하고 전담목사가 된 뒤 신학생 시절 호감을 갖고 있던 여 동창생을 전도사로 데려왔다. 둘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지저분한 소문들이 나기 시작했다. 교회의 한 집사가 보다 못해 K목사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버렸다. K목사는 이후에도 잠시 가르치던 신학교 여학생들을 농락하고, 미국 유학중 여학생과 동거하다시피 하는 등 추잡한 행동을 계속했다.
K목사의 부정은 사실 한 차례 공론화될 뻔했다. 1980년대 말 그의 비행을 잘 알고 있던 서울의 한 교회 사모님이 예배에서 순서를 맡아 교회로 찾아온 K목사를 쫓아내버렸다. 이에 K목사가 시무하던 교회의 당회원들이 격분해 소송을 벌이려 했는데, 비행을 들춰보아야 결국 기독교회의 망신이 아니겠느냐며 교회 어른들이 나서서 무마했다고 한다.
신학대 총장을 지낸 또 다른 K목사도 유학 시절 부도덕한 행동으로 지탄을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참하고 신실한 여학생과 사귀었는데, 미국에 유학간 뒤 변심했다. 이 여학생은 미국까지 건너갔다 낙심해서 귀국한 뒤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런데도 K목사는 죄의식이나 미안한 마음 없이 신학교 기숙사에서 현지 여학생과 문란한 생활을 계속했다. 나는 이를 직접 목격하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목회자들이 미사여구로 교인들을 많이 모으고 큰 교회를 이루었다고 해서 참된 목회라 할 수 있을까. 바리새인들의 아름답고 권위 있는 말에 미혹되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던가. “그들의 가르침은 따르되 그들의 행동은 따르지 말라.” 진실하지 못한 일부 목회자들이 교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현실이 서글프고 안타깝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