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히 알면서도 수사 한계 ‘검은머리 외국인’ 딜레마

입력 2013-05-26 18:18


CJ가 ‘검은머리 외국인’을 통해 역외탈세와 해외 비자금 조성에 나섰다는 의혹이 짙어지면서 박근혜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주가조작 척결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금융감독 시스템으로는 조세피난처에서 검은머리 외국인을 동원해 이뤄지는 각종 불공정 거래에 대항할 길이 사실상 없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관건은 검은머리 외국인의 조세·자본 도피를 색출하는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26일 “첩보 등으로 검은머리 외국인의 계좌를 알게 되지 않는 한 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거래가 역외탈세와 연관된 것인지 시장감시 단계에서 파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국 주식을 취득하려는 외국인 투자자는 금융 당국에 투자등록을 신청하는데 이 등록자가 외국 자본인지, 해외에 있는 국내 법인의 페이퍼컴퍼니인지를 가려내기부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제출된 투자자 분류 코드로 투자 주체를 인식할 수밖에 없다”며 “실제로 외국인인지를 일일이 파악하지 않는 한 주문 주체가 사실상 한국 법인인지 알아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CJ가 의심받고 있는 검은머리 외국인의 조세·자본 회피는 고전적 수법에 속한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매수 주문을 낸다. 해당 주식에 외국계 자본이 유입되는 것처럼 만들고, 다른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주가가 뛰게 된다. 이때 물량을 일제히 처분해 이익을 보는 것이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사실상의 자사주를 매수·매도하는 과정에서 한국 본사에 있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더라도 외국인 지분율 움직임으로만 파악된다. 다른 투자자들이 마땅히 참고해야 할 공시 정보는 차단된다.

문제는 금융감독 단계에서 검은머리 외국인의 개입 여부를 알기 어려워 이런 뻔한 수법이 계속 먹혀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검찰의 정보망에 걸려든 CJ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며, 다른 재벌기업도 같은 수법으로 그동안 막대한 해외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탈루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거래소 관계자는 “같은 수법을 써서 탈세에 나서는 다른 재벌기업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마음먹고 검은머리 외국인을 동원하는 세력이 있어도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해외 관련 자금원은 접근에 한계가 있다”며 “혐의가 나타나면 그동안 금융감독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었는지 새로운 시각에서 다각도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경원 강창욱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