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만 놓고 방치 ‘마을벽화’ 흉물로
입력 2013-05-26 18:11 수정 2013-05-26 22:41
26일 찾은 서울 이화동 낙산공원 인근 ‘벽화마을’. 한 건물의 외벽엔 타일 형태의 두 마리 낙타 그림이 있었다. 한 마리는 그나마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 마리는 얼굴과 목만 남긴 채 타일이 떨어져 나갔고 벽에는 접착제 자국만 누렇게 남아있었다. 동네 주민이나 공원 방문객 누구도 벽화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4동의 벽화마을에도 한때 ‘작품’이 있었다는 흔적만 있을 뿐 상당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돼 있었다. 주민들은 “그림이 낡아서 볼 것도 없다”며 “보수는 왜 안 하는 거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소외 지역 생활환경 개선 명목으로 조성된 벽화마을의 그림들이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2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벽화마을은 2006년부터 문체부가 주최하고 공공미술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된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2007년까지 예산 27억3000만원을 들여 전국 31곳에서 관련 사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사후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출범 당시부터 사후관리에 대한 논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도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마을미술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52개 지역에 조성된 마을의 그림도 일부 방치되고 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지원금의 3%를 사후관리 기금으로 남겨두고 지자체가 사후 관리를 하도록 했지만 사후관리기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부산시 감천동 ‘문화마을’의 경우 한국 내 이국적 풍경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설치된 작품에 대해 주기적인 보수가 이뤄졌다. 구청 측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빈집을 갤러리로 꾸몄고, 아트숍을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의 작품을 팔았다. 이런 노력으로 관람객도 증가해 지난해 9만8000명이, 올해는 4월말까지 11만명이 다녀갔다.
반면 강원도 철원군 월하리 ‘달이 머무르는 마을’은 사후관리기금만으로는 부족해 군청 비용을 충당하다 이마저도 어려워 손을 놓고 있다. 철원군청 관계자는 “월하리 프로젝트는 실패로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 염창동의 ‘자연 속의 하모니’ 프로젝트 역시 주민센터 공간에 벽화를 설치했지만 보수는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구청은 유지 보수와 관련한 업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마을미술프로젝트 사후관리 연구조사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공공미술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어서 일괄관리가 어렵고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은 관리에 신경을 덜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신상목 박은애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