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천국의 마지막 계단
입력 2013-05-26 17:15
앤드루 머리는 그의 책 ‘겸손’(Humility)에서 이렇게 말한다. ‘겸손이란, 기독교의 가장 높은, 그리고 가장 귀한 원리다. 흔히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하지만, 그 사랑이란 겸손이라는 뿌리에서 피어난 꽃에 불과한 것이다. 뿌리가 마르면 꽃도 시들고 말 것이다.’ 예수님의 구속이라는 열매를 만들어 낸 것도 바로 ‘겸손’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통찰이다. 겸손이 무엇인가? 자아의 죽음이다. 철저한 자기 죽음이다. 성도가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 전, 마지막으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코스가 있다면 바로 이 ‘자기 죽음’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정체성을 8가지로 정리하셨다. 이른바 팔복이다. 로이드존스의 말처럼 팔복은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8개의 계단이라고 했는데, 언젠가 나는 8개의 계단을 차곡차곡 밟는 심정으로 팔복을 묵상하는 중에 적잖게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 왜냐하면 마지막 8번째 계단은 기대와 달리 철저한 죽음과 짓밟힘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팔복을 생각해 보자. 자신의 심령의 가난함을 발견한 한 성도가 예수의 사람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림이 팔복의 그림이다. 그는 자기의 허물로 애통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다. 그는 타인과 화평을 이루려고 자기를 부인하며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마음의 청결함, 즉 완전을 향하여 눈물겨운 투쟁을 한다. 여기까지가 7번째 계단이다. 그러면 이 자리까지 온 성도를 향하여 마지막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 칭찬과 박수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마지막 계단을 올라가는 순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죽음과 핍박이다. 마치 어린 시절 보물섬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천신만고 끝에 찾은 보물 상자를 열었으나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팔복의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죽음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누구든지 의구심이 들 것이다. ‘내가 잘못 올라온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에 한 가지 팁을 주고 있다. 잘못 온 것이 아니라, 제대로 온 것이며, 그러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한다. 역설적인 격려와 위로다. 천국으로 가는 비밀통로는 바로 그 당황스러운 죽음의 자리와 비밀스레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준다. 지독한 역설이다. 죽음과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 모욕과 영광이 연결되어 있다. 이것보다 더 심한 역설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다.
공산주의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혁명의 주인공들이 결국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와대 공직자들의 윤리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요즘, 한 일간지에서는 ‘청와대의 벼락감투들이 지금 새겨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신적 긴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신적 긴장’ 정도가 아니라 ‘자기 죽음의 정신’이 필요하다. 끝까지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해도 당황스러워하지 않고 죽어야 한다. 그곳이 천국과 연결된 마지막 계단이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