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페루 김명수 선교사] (6·끝) “아스타 루에고” 작별인사 드리며

입력 2013-05-26 16:59


“손잡아주는 동역자가 없다면 선교사역은 아예 불가능”

루이스 마드리드(Luis Madrid·43·주님의집교회 담임) 목사님은 신실한 목회자입니다. 2002년 리마의 중산층 지역에 설립된 주님의집교회는 성도가 100여명에 이르고 지난 19일 두 번째 장로를 안수하면서 마침내 당회가 조직됐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개척한 분은 마드리드 목사가 아니라 한국 선교사인 김현곤 목사님입니다. 김 선교사님이 개척하시면서 당시 신학생이었던 마드리드 목사를 부교역자로 삼은 것입니다. 이어 8년간 함께 사역하다가 귀국하면서 마드리드 목사에게 인계했고, 오늘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김 선교사님이 페루에 계시면서 하신 일이 많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최대 사역은 아마 좋은 동역자를 발굴하고 잘 양육해 사역을 인계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선교사의 현지 사역이 이벤트 중심의 단기 사역이 아니라면 현지인 동역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어떤 동역자를 만나서 어떻게 동역하느냐에 따라 선교 열매의 상당 부분이 좌우됩니다.

어떤 동역자는 수십년을 함께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1년도 채우지 못합니다. 어떤 선교사는 같은 동역자와 오랫동안 함께 사역하지만 수시로 동역자를 바꾸는 선교사도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제가 현장 선교사로 사역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좋은 동역자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칠레에서부터 이곳 페루까지 수많은 목사님과 장로님, 전도사님들의 사랑과 신뢰 가운데 손을 잡아준 동역자가 있었기에 사역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동역자는 현지인 사역자만이 아닙니다. 같은 사역을 함께 하는 한인 선교사가 있다면 그는 가장 중요한 동역자입니다. 비록 사역은 독립적으로 하고 있을지라도 같은 선교단체나 교단에서 파송 받은 분들이 있다면 그들 또한 뗄 수 없는 동역자입니다.

페루에는 1998년 설립된 ‘페루주재 한인선교사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당시 선배 선교사님들이 공동체를 통해 선교사로서의 품위를 지키면서 상호 친목과 동역을 꾀하자며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그 역할을 잘 감당했기에 현재 50명 이상의 선교사님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인 선교사들은 파송 기관도, 현지 소속도, 사역 내용도 다릅니다. 하지만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부름을 받아, 같은 한국교회를 배경으로, 같은 페루교회를 위해 사역하고 있는 동역자들입니다.

한인 선교사 동역자들은 현지인 동역자들과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현지인 동역자들과의 관계가 교제와 더불어 사역이 중심이라면 한국인 선교사 동역자들은 사역보다는 관계가 중심입니다.

한인 선교사 동역자들 간에 간혹 빚어지는 경쟁과 시기, 심지어 비난과 모함은 때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함께 쉼을 나누고 기도하는 관계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렇게 서로 격려해주는 분들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평안을 느낍니다.

선교사에게는 또 다른 동역자가 있습니다. 후원 동역자들입니다. 선교사의 가정과 건강, 사역을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으로 격려하며 위로해주며, 헌금으로 지원해주는 동역자들이 없다면 선교사는 단 하루도 사역할 수 없습니다.

후원 동역자들과의 관계는 중요합니다. 선교사 편에서는 신실한 사역, 투명한 재정 관리·보고, 은혜로운 선교통신 등이 이뤄져야 합니다. 후원 동역자 쪽에서는 선교사에 대한 신뢰와 지원 및 적절한 격려와 관리 등이 동반돼야 합니다. 그러할 때 선교의 지상명령을 함께 수행하는 진정한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선교사는 이 말씀대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각자의 땅 끝으로 가서, 각자 주님이 주신 은사와 사명대로 사역을 합니다. 그래서 선교 사역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선교 사역의 방향은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이 방향성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교회가 없거나 교회가 약한 지역에서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돕는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역 자체가 교회와 직접 연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목표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려는 것이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교회가 중심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없거나 또는 교회가 약한 지역에서 교회를 세우거나 교회를 돕는 사역을 하다 보니 조심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랑과 진리로 가르치고자 시작된 선교사의 지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그만 선교사의 판단이 곧 법이고, 진리가 되기도 합니다. 선교사들이 신앙과 신학, 학력은 물론 특히 재정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다 보니 선교사가 모든 문제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 돼버리는 것입니다.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사역지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최종 결재권자가 되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더욱이 사역이 성공(?)하고 커지면 그동안의 헌신과 판단이 옳았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생기고, 이 자부심은 이어 교만이 되고, 교만은 오만과 독선이 됩니다. 결국엔 동역자는 없어지고 수하 직원만 남게 됩니다.

동역자와 수하 직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존경과 인정, 배려의 유무라고 생각합니다. 동역자는 존경하기 때문에 그의 삶과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합니다. 그러나 수하 직원은 존경과는 상관없이 업무만 요구하기 때문에 그의 삶과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대신 내 결정을 강요하고 상대방은 무시합니다. 일은 같이 합니다. 그러나 수하 직원은 내가 시키는 일만 해야 합니다.

23년차 선교사인 저 역시 제 주변과 사역을 둘러보면서 내게 아직 동역자가 있는가, 수하 직원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또 다른 동역자가 없다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보호해주며 인도해주는,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는 동역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감히 그분의 동역자가 될 수 없지만 그분이 우리를 그분의 동역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보혜사 성령 하나님입니다.

지난 몇 달간 지면을 통해 독자님들과 교제하고 귀한 사랑과 기도를 나눌 기회를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령님의 동역자로서 우리 모두 가정과 교회에서, 선교 사역에서 서로 신실한 동역자가 되기를 기도드리며 이번 호를 끝으로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스페인어에는 몇 가지 이별 인사가 있습니다. 가볍게 건넬 때는 ‘차오’라고 합니다. 많이 알려져 있는 ‘아디오스’는 다시 만날 약속이 없을 때 씁니다. 약간 무게감 있는 표현이면서 기약 없는 이별일 때 사용하는, 약간 슬픈 어감이 묻어납니다.

이와 함께 다시 만날 약속이 있는 경우에는 ‘아스타 루에고’라고 하고, 금방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스타 프론토’라 합니다. 국민일보 독자님들을 다시 뵐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늘나라에서는 꼭 다시 뵐 테니까 이렇게 인사드리겠습니다.

“아스타 루에고!”

김명수 페루장로교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