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갈등관리 시스템

입력 2013-05-26 18:59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지난 정권에서 시작된 갈등이 7년을 끌었지만 국회나 정부는 그동안 사실상 뒷짐을 진 채 이 문제를 방치했다. 사업주체인 한전에 해결을 맡겨놓았으나 논란은 더 확대됐다. 최근 국회가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고, 정부도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재갈등과제로 선정했다. 만시지탄이지만 국회와 정부가 문제 해결에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송전탑 건설 자체는 불가피한 일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마다 블랙아웃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전력 생산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 3호기의 전력을 전국 각지로 보내기 위해 송전탑이 건설돼야 한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문제는 이 상황으로 인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는 얘기는 우리 사회의 갈등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지역 주민들의 하소연에 따르면 사회적 합의 없이 사업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됐고, 문제가 불거진 뒤에는 금전적 보상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논란 확대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07년 2월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의결한 바 있다. 갈등영향분석 실시와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설치, 참여적 의사결정방법을 활용한 갈등조정협의회 설치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후 정부는 2009년 이 내용을 반영한 방대한 양의 공공기관 갈등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

매뉴얼은 사안에 대해 플로차트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도록 되어 있다.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 대응 조치까지 담았다. 하지만 이후 정부의 갈등관리 시스템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는 평가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매뉴얼이 기대했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매뉴얼의 문제일 수도,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매뉴얼이 형식적으로만 운용되는 탓일 수도 있다.

정부는 새로운 갈등관리 체계를 고민하면서 정부 내 갈등관리협의체도 발족시킬 예정(국민일보 24일자 7면 보도)이라고 한다. 보다 효율적으로 갈등과제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갈등과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고민 중에는 위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데에만 익숙하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 소홀했던 그동안의 관료사회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반성과 점검도 있었으면 좋겠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