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의 전제조건

입력 2013-05-26 19:05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1년에 25만여명이 숨진다. 대부분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이들 가운데 암 등 만성질환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다 죽음을 맞는 환자는 매년 18만여명. 이 중 3만여명은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를 받고 있다.

대부분 의학적으로 더는 회복될 가망이 없지만, 각종 연명치료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목숨만 부지하는 환자도 힘들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과 의료진의 마음도 편치 않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가족과 좋은 추억을 만들면서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연명치료가 삶을 멈추는 시기를 약간 늦출 뿐이라며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특별위원회가 최근 임종기(臨終期) 환자와 가족의 선택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의료·법조·윤리·종교계, 환자단체 대표 등 11명으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해 왔다. 2009년 5월 이른바 ‘세브란스병원 김할머니 사건’으로 촉발된 연명치료 중단 논의를 위해 2010년 사회적협의체가 구성됐지만 연명치료 중지 대상 환자 및 의료에 대한 합의 외에 더 이상 논의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중단됐다. 때문에 이번 특별위원회의 권고안이 앞으로 결실을 거둘지 주목된다.

권고안에는 연명치료 중단 대상 환자와 의료, 환자의 의사 확인, 제도화 방법 등이 담겨있다. 하지만 일부 내용에서 논쟁의 여지를 남겼고 남용 위험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환자 의사 확인에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건강할 때 미리 써 둔 사전의료의향서(혹은 생전유서)나 의사와 협의해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POLST) 등 연명 의료에 대한 명시적, 추정적 의사 확인이 불가능할 때 어떻게 할지가 논란거리다.

권고안은 이 경우 가족의 ‘대리 결정’을 인정하고 있다.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가족 전원의 합의와 의료인 2인(혹은 병원윤리위원회)이 확인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합의하더라도 환자의 진의를 왜곡할 위험성이 높다. 실제 의료현장에선 말기 환자나 가족이 경제적 부담을 우려해 혹은 가족에 심리적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아나 독거노인, 무연고자 등 적법한 대리인이나 가족이 없는 경우, 남용 가능성이 우려된다. 대리 결정자가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가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판정하는데, 치료비 등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병원에 결정권을 주는 게 윤리적으로 타당한지 의문이다.

환자단체 등은 병원윤리위원회 대신 제3의 공적기구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가령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내에 ‘연명의료위원회’를 설치해 환자의 의사 확인, 가족·의사 판단의 진정성, 대리 결정 허용 여부 등을 최종 확인하거나 결정토록 하자는 것이다. 복지부가 향후 제도화 과정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것들이다. 이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남용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을 조건으로 연명의료 중단의 대리 결정을 허용해야 한다. 아울러 환자가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지난해 기준 55개 의료기관만 운영)를 선택하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 인식 제고를 위한 의료·사회 환경 조성이 선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민태원 정책기획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