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소외계층에 균등한 기회·자신감 주는 게 핵심”

입력 2013-05-26 18:02 수정 2013-05-26 22:34


기회 공작소 만들고 키운 뮤라트 뷰랄 대표

기회 공작소는 뮤라트 뷰랄 대표의 인생역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그는 터키에서 일하러 온 광부의 아들이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11세까지 살다가 부모님이 터키로 돌아가게 되자 함께 귀국했다. 터키에선 기초과학 학교에 들어갔는데 수학에 재능을 나타냈다. 하지만 몇 년 뒤 부모님이 다시 독일로 이주하게 됐을 때 좌절하기 시작했다. 터키에서 생활하면서 잘 쓰지 않았던 독일어 구사능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독일 교사는 그에게 대학에 갈 수 없는 실력이니 대학입학 자격시험(아비투어)을 포기하라고 권유했다. 포기하는 순간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이 밀려왔고, 그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대학에 들어갔다. 주위 사람들 중 대학에 입학하리라고 생각한 이는 없었다. 그리고 2004년 ‘독일에 있는 터키 어린이들을 위해 뭔가 하자’는 누나의 제안을 받아 터키 이주민 자녀를 대상으로 방과후 학습지도를 시작했다. 첫날에는 그를 포함한 3명의 대학생이 아이들을 가르쳤다.

16∼17세의 고학년 아이들의 공부를 봐줬고, 고학년이 다시 저학년의 공부를 돕도록 했다. 이런 시도는 고학년 아이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도움을 준 고학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이 퍼졌다. 학업에 문제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고학년에게 연락을 하게 됐고 학교의 분위기를 바꿨다. 기회 공작소의 시작이었다.

처음 그의 계획을 접한 아버지는 “이뤄낼 수 없는 꿈”이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기회 공작소는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자신감이라는 가장 큰 자산을 심어주는 결실을 이뤄내고 있다.

“제가 수학을 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언어가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터키 가족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언어가 아닌 수학에 집중했던 거죠.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와 칭찬이 제게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회 공작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역할 모델과 자신감이다. 뷰랄 대표는 역경을 딛고 대학생이 돼 이민자 아이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처음 가르쳤던 8학년 학생은 지금 대학생이 돼 기회 공작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뷰랄 대표는 “그 아이는 내게 대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봤다”며 “나는 그 아이에게 스스로 공부해서 대학생이 됐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고 저학년일 때는 몰랐던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얘기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스스로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쁜 일을 트라우마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좋지 않은 부분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카스트로프-라우셀=선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