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파니와 세바스티앙
입력 2013-05-24 18:05
얼마 전 몬트리올에서 온 손님을 맞았다. 파니(Fannie)와 세바스티앙(Sebastian)이다. 둘 모두 박사과정 중에 있다. 파니의 배가 제법 불룩하게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아이를 가진 게다. 임신 5개월이라고 했다. 파니의 배우자인 세바스티앙은 훤칠한 키에 친절하고 상냥한 남자였다. 생화학 전공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법적혼이 아니라 사실혼, 그러니까 동거관계에 있다. 하지만 서양의 사실혼은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법적혼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둘은 2층에 살고 파니의 어머니는 아래층에 산다. 또 옆에는 이모의 가족이, 그 아래층에는 삼촌 가족이 산다. 일가친척이 몬트리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은 대가족이나 다름없다.
이혼·재혼 불허한 로마법
몬트리올의 항공기 제작기업 봉바르디아(Bombardier)에 근무하는 어떤 한인 집사님을 알고 있다. 그에 따르면 회사 동료의 3분의 1 정도는 자녀가 있음에도 혼인신고를 안 하고 산다. 왜 혼인신고에 적극적이지 않을까. 우선 혼인신고를 하든 안 하든 법적으로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서양문화의 이면에는 ‘혼인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합의(合意, consensus)로 성립된다’는 고전 로마법의 개념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고자 하는 의지가 두 사람의 관계를 결정한다. 국가와 법은 이런 사적(私的) 관계를 보호할 뿐, 그런 사적 관계를 국가에 신고했나 안 했나로 차별하지 않는다.
고전기 로마법에 따르면 혼인은 당사자의 자유로운 합의로만 성립된다. 부모의 견해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녀의 혼인에 합당한 이유 없이 반대하는 가부권자(父나 祖父)는 총독 앞에 소환되기까지 했다. 고전기 로마법의 개념은 기독교 시대에도 여전했다. 536년 기독교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법을 따라 “상호간의 사랑이 혼인을 만든다”는 아주 당연한 법을 공포했다. 혼인이 사랑과 존중으로 성립된다면 이혼은 어떨까? 합의로 맺어진 혼인이기에 합의가 깨지면 해소되는 건 논리적 귀결이다.
그런데 11∼13세기에 로마 가톨릭은 혼인을 성례전으로 만들고 교회법을 로마법보다 상위에 두기 시작했다. 혼인이 성례전적 결속이 된 결과, 로마법이 규정하던 이혼이나 재혼이 불가능하게 됐다. 배우자의 간음, 학대, 유기 등의 사유도 이혼의 조건이 되지 못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을 경우 중세 천주교는 부부의 별거(judicial seperation)를 명했다. 별거는 부부가 단지 침실과 식탁을 함께 사용하지 않는 것에 불과하지 이혼은 아니다. 이혼을 불가능하게 만든 교회법은 중세에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성례전적 결혼관이 중세를 지배했지만, 남녀 상호간의 의지로 혼인이 성립된다는 로마법의 전통은 변함없이 유지됐다. 당사자의 의지는 혼인 성립을 위한 유일한 요건이었다. 부모의 동의나 교회의 권위도 필요치 않았다. 남녀가 단지 구두로 약속만 해도 혼인이 성립됐고, 형식상의 문서나 증언조차 불필요했다. 요컨대 중세의 혼인 역시 로마법의 오랜 전통에 충실했던 것이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마 22:30)에 근거해, 혼인이 자연 질서에 따른 남녀의 현세적 공동체라고 보았다. 혼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적 제도이지 천국에까지 지속되는 제도는 아닌 것이다. 고로 혼인은 성례전이 아니다. 수도적 서언 이후에 혼인을 못하도록 금지한 중세교회법은 반(反)성경적이고 비자연적이다. 아울러 이혼과 재혼도 자유의사에 따른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혼인이 남녀의 합의로 성립된다는 로마법의 전통은 흔들림이 없었고, 결국에 이르러 오늘날 서양 혼인법의 기본 이념이 됐다. 그렇기에 국가에 혼인신고를 했느냐 안 했느냐에 하등의 가치를 두지 않으며, 결합의사가 있는 남녀의 가정과 그 자녀는 아무런 차별 없이 동등하게 보호된다(중세와 종교개혁시기의 결혼제도에 대해서는 김정우, 루터의 종교개혁과 로마 가톨릭 교회법의 관계에 관한 연구, 숭실대 박사학위논문 참조).
‘부부의날’이 주는 의미
6세기 기독교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에 의해 편찬된 후, 성경에 근접하는 권위로 인정받은 ‘로마시민법대전’의 한 대목을 인용하고자 한다. “함께 산다고 해서 혼인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 간의 사랑이 혼인을 만든다.”(Digesta 24.1.32.13)
그럼 부부 사이의 폭력은? 사실혼이든 법률혼이든, 함께 사는 남녀 사이의 폭력은 서양에서는 폭력에 관한 형법으로 처벌된다. ‘사랑해서 때린다’고? 사랑과 폭력은 양립불가다. 여자는 한 남자의 아내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피조물인 한 인간이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폭행이나 위협을 동반한 부부사이의 강제 성관계를 ‘부부강간죄’로 처벌한다. 우리나라 대법원도 지난 16일 ‘부부강간죄’를 인정했다. “배우자 간의 사랑이 혼인을 만든다.” 너무나도 평범한 로마법의 이런 명제가 부부의 날(5월 21일)을 지나며 더욱 새삼스레 다가온다(골 3:19, 엡 5:28 참조).
<한영신학대 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