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좋은 포옹 vs 나쁜 포옹
입력 2013-05-24 17:1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복지시설에서 키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좋은 음식과 깨끗한 환경을 제공했는데도 거기서 자란 아이들의 사망률이 유독 높았던 것이다.
수수께끼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풀렸다. 원숭이 실험을 통해 어머니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자랄 경우 뇌에 손상을 입으며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건강이 나빠진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 실험에 의하면 오감 중 촉각만 느낄 수 있으면 다른 네 가지 감각을 잃은 경우보다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미숙아에게 매일 마사지를 해주면 그냥 놔둔 미숙아보다 50%나 빨리 성장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부모에게 포옹을 자주 받은 아이의 뇌에서는 아드레날린과 세로토닌이 나와 머리가 좋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포옹을 하면 사랑과 행복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여성이 출산할 때 많이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도 관련이 있어 사회적 상호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세계 400개 문화권을 조사한 결과, 포옹을 많이 하는 개방적인 사회일수록 폭력이 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안아주는 ‘프리허그’를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프리허그는 삭막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와 고독감을 치유하기 위한 목적이다. 싱가포르 및 일본의 과학자들은 인터넷상에서 포옹을 할 수 있는 사이버포옹 장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포옹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장치들이다. 미래에는 촉감을 전달할 수 있는 SNS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 초 오스트리아 빈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불편한 상황이거나 낯선 사람과 포옹할 경우에는 옥시토신 대신 코르티솔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코르티솔은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나오는 물질로서, 장시간 누적될 경우 불안감 및 우울증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나쁜 호르몬이다.
정신의학자들에 의하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포옹의 효과가 더 큰 이유는 포옹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얻는 게 세상의 진리인 모양이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