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신사도행전의 인생
입력 2013-05-24 17:00 수정 2013-05-24 17:05
요한복음 14장 16~17절, 사도행전 2장 1~4절
마른 뼈 같은 절망적인 인생에 희망이 있을까요. 말씀에 기초한 성령의 능력으로 붙잡히면 희망은 있습니다. 말씀으로 그 형체가 맞추어지고 성령이 그 속에서 역사할 때 ‘크고 강한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에스겔 37장). 우리의 삶을 ‘신사도행전의 인생’으로 변화시키는 성령님의 역사는 다양하고, 입체적입니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령님과의 복된 만남(‘엔’의 역사)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을 만나면 우리 속에 머무십니다(요 14:17). ‘속에’, ‘안에’를 가리키는 헬라어는 ‘엔’입니다. 이를 가리켜 중생,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영접할 때 성령님께서 내 안에 내주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롬 8:9 등). 이는 기적 중에 기적이요, 놀라운 신비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고전 12:3).
인격적인 성령님께서 내 안에 머물면 변화가 따라옵니다. 우리 인생의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지고, 인격과 성품이 성숙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갈 5:22∼23).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말합니다. 바울은 또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노라”(갈 5:24)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노라”(고전 9:27)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고백합니다. 바로 ‘엔’이 충만한 역사입니다.
둘째, 성령님과의 행복한 동행(파라의 역사)입니다.
성경은 성령님을 보혜사라 말합니다(요 14:16∼17). 보혜사라는 단어는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 단어는 파라(곁에, 함께)와 칼레오(부르다)의 합성어로 ‘곁에서 돕는 분’이란 뜻입니다. 영어성경(KJV, NIV 등)은 이 단어를 다르게 번역합니다. 성령님은 위로자, 상담자, 돕는자로서 우리 곁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언제나 위로해주시고, 슬픔 중에 있을 때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어려움 속에 처했을 때 상담해주시며, 부족하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공급해주십니다. 성령님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십니다. 동행하시는 성령님을 향해 기도합시다.
“성령님, 나를 도우소서. 위로하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셋째, 성령님과의 아름다운 비행(에피의 역사)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눅 24:49). ‘에피’의 역사는 위에서 임하는 능력의 역사입니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위로부터 불같이, 바람같이 임하면서 태어났습니다(행 2:1∼4).
성령님이 위로부터 능력을 부어주실 때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이 일어납니다. 이 에피의 역사가 일어나면 다양한 은사가 나타납니다(고전 12:8∼11). 그리고 에피의 역사를 통해 복음전파의 역사가 이뤄집니다. 이때 성령은 선교의 영이 되십니다. 지역과 열방을 향하여 독수리 같이 비상하여 멀리까지 날아갑니다(행 1:8).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에피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위로부터의 능력이 임하면 누구나 지상명령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마 28:16∼20). 내 안에, 내 곁에 그리고 위로부터의 능력으로 입혀질 때 위대한 하나님의 사건은 오늘도 일어납니다.
정종희 목사(서울 영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