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원 출신 회장 성공신화… 이순우 “민영화 위해 행장 겸직”

입력 2013-05-23 18:59 수정 2013-05-23 23:15


‘욕심 부리지 말고 앞만 보고 가자’고 다짐했던 말단 은행원이 금융지주 회장이 됐다.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 내정자는 은행원으로 출발해 같은 금융그룹에서 은행장과 금융지주 회장을 모두 맡은 최초의 금융권 인사다. 그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금융의 2만여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면 은행장, 지주회장을 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준 것 같아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1977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에 입행했다. 98년 상업은행 홍보실장을 거쳐 인사부장, 경영지원 본부장, 개인고객본부 부행장, 수석부행장 등을 지나 은행장까지 오른 대표적인 ‘우리맨’이다. 행원에서 출발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서울·신한은행을 거쳐 하나은행에 몸담은 것과 달리 이 내정자는 줄곧 우리금융에서만 근무했다.

2002년 첫 임원으로 기업금융단장을 맡으면서 ‘LG카드’ 사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어 신뢰를 받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개인고객본부장(부행장)을 맡아 “고객 모시기에는 베스트(best)가 없다. 다만 베터(better)만 있을 뿐”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고객을 만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90도로 인사하고, 점자·세레명·영문 등 여러 개의 명함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고객이나 직원의 처갓집 상을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내정자는 일처리는 섬세하지만 한번 결정하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갖췄다. 그는 은행장 취임 이후 “은행장이 되려고 생각했다면 내가 먼저 지쳐버렸을 것”이라며 “앞 발자국만 보고 가다 보니 은행장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은행장 시절 ‘우리’라는 은행명이 혼동을 준다며 다른 은행장이 영문발음을 따 ‘워리(Woori)’라고 부르자 “우리가 강아지냐”며 정색했을 정도로 애사심도 깊다.

이 내정자가 은행장이 된 후 밝힌 취임 일성은 “최근 우리의 열정이 점점 식는 듯하고 꿈과 비전이 멀어져가는 듯하다”며 후배들을 질책하는 것이었다. 그는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것은 앞으로 뛰어가는 것뿐”이라며 “1등 은행은 물론 아시아 리딩 뱅크로 전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시아의 최고은행을 만들고 싶다던 그가 지주회장으로 내정되면서 우리금융의 민영화 성공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내정자는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여러 차례 시도했던 민영화 방안의 장단점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안을 만들고 있다”며 “우리금융의 미래와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한 최적화된 전략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금융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민영화를 위한 책임경영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 내정자는 “은행원에서 시작해 회장까지 된 사람이 임기 등 개인적인 문제로 민영화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은 지난 정부에서 3차례나 자체 민영화 방안을 제출했지만 금융당국이 모두 이를 거부해 민영화가 무산됐다. 민영화 작업은 고도의 정무적 판단은 물론 정부와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송웅순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은 “이 내정자는 민영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외협상력을 보유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이 행장의 회장 선임에 대한 안건을 임시 주주총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임시 주주총회는 다음 달 14일 열린다.

강준구 진삼열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