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일본의 무리한 양적완화를 비판하며 제기했던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엔저(円低) 정책으로 세계경제 성장엔진인 중국의 위안화 가치가 절상돼 제조업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에 아베노믹스에 자극받아 그동안 20% 이상 상승했던 일본 증시가 7% 이상 폭락한 것은 물론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증시가 출렁거리고 있다.
중국 외환교역센터는 23일 100엔당 위안화 기준가격을 전날보다 0.0446위안 내린 5.9797위안으로 고시했다. 엔화 약세 영향으로 올해 들어 환율 하락폭이 커지면서 지난 1월 18일 처음으로 7위안대가 무너진 이후 4개월여 만에 다시 6위안대마저 붕괴됐다.
외환시장은 위안화 환율 하락의 원인으로 ‘아베노믹스’를 지목하고 있다. 일본 정부 주도의 엔저 기조로 인해 위안화가 평가절상을 ‘당한’ 셈이다.
세계 주요국들의 양적완화 분위기 속에 중국은 수출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환율 하락에 따른 핫머니(투기성 단기 부동자금) 유입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는 등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엔저의 공습’ 속에 달러화 대비 위안화 환율까지 출렁대고 있다.
중국 내 수출기업에는 비상이 걸렸고, 환율 악재는 제조업 전반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23일 발표된 중국의 5월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가 7개월 만에 50선 아래인 49.6을 기록했다. 50을 넘어서면 ‘경기 확장’ 국면을, 50을 밑돌면 ‘경기 수축’ 국면을 의미해 중국의 경제회복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PMI 세부 지수인 ‘신규주문’ 항목도 49.5까지 떨어져 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국 제조업 침체 소식에 아베노믹스 효과로 고공행진을 만끽하던 일본 증시도 폭락했다. 도쿄증권거래소 닛케이 평균주가는 이날 1만5000선이 무너지며 전날보다 1143.28포인트(7.32%) 빠진 1만4483.98로 마감됐다. 지수 낙폭은 2000년 4월 이후 13년1개월 만에, 지수 하락률은 4년7개월 만에 각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오사카 증권거래소에선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닛케이 평균주가 선물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국 증시 역시 장초반 큰 폭으로 떨어졌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16% 빠졌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도 이날 개장과 함께 하락세로 출발했다. 중국의 제조업 경기에 대한 우려가 투자심리를 냉각시켜 오전 9시35분 현재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35.09포인트(0.23%) 떨어진 1만5272.08에서 거래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도 14.82포인트(0.90%) 낮은 1640.51을, 나스닥 종합지수는 35.52포인트(1.03%) 내려간 3427.78을 각각 기록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엔低 ‘삭풍’에 中 제조업도 얼어붙어
입력 2013-05-23 18:44 수정 2013-05-24 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