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명여권 전력 때문에’… 합법 체류 中동포들 쫓겨난다

입력 2013-05-23 18:20 수정 2013-05-23 22:44


1만명 추방되거나 도망자 신세

중국동포 남모(51·여)씨는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아버지의 고향,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허락된 체류 기간은 3개월이었지만 당시 대다수 중국동포가 그랬듯 식당일을 하며 1년5개월 머물다 돌아갔다. 이것이 문제가 돼 94년 다시 입국하려 할 때 여권이 나오지 않아 결국 다른 사람 이름의 ‘위명(僞名)여권’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왔다.

2001년 이 여권도 만료됐지만 갱신하지 않았던 남씨는 강제 출국됐고, 7년간 입국 규제 대상이 됐다. 당시 남씨는 추방되면 그만인줄 알고 당국에 위명여권을 신고하지 않은 채 출국했다. 7년을 기다린 그는 2008년 진짜 여권을 받아들고 다시 입국해 한국에서 합법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를 따라 국적취득 신청을 하고 2차 면접을 앞두고 있던 지난달 밤중에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단속반 직원이 난데없이 남씨 집 문을 두드렸다. 과거 위명여권을 사용한 전력 때문에 강제퇴거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남씨는 치매를 앓는 88세 노모를 돌보며 서울 사립대학 3학년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경영학도인 아들의 학비를 버느라 쉼 없이 식당에서 일해 왔다. 평소 아들에게는 “돈 벌 시간에 공부하라”며 아르바이트도 못하게 했다. 남씨는 중국에 가족도, 집도 없는 상태다. 법무부에 진정서를 내고 현재 임시로 경기도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머물고 있다. 빈 집에 남겨진 노모는 한 노인복지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남씨의 언니는 “위명여권은 12년 전 일이고, 5년째 합법 체류하며 국적신청까지 했는데 정말 억울하다”며 “90세 치매 노모가 동생만을 찾는 상황이고, 대학생 조카는 학업의 꿈을 접을 위기”라고 했다.

남씨처럼 정당한 자격을 얻어 체류 중에 과거의 위명여권 사용을 이유로 추방당하는 중국동포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조선족교회, 중국동포교회, 한중사랑교회 등이 참여한 ‘중국동포 체류권 보장을 위한 동포단체 총연합’은 최근 “법무부가 과거 잘못을 문제삼아 동포들을 추방하면서 이들의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며 위명여권 전력에 대한 사면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국동포 송모(42)씨 역시 99년 위명여권으로 한국에서 7년간 생활했다. 여권이 만료돼 출국했고 이후 한국의 할머니로부터 정식 초청을 받아 2007년 본인 이름으로 재입국했다. 영주권까지 취득했지만 이 과정에서 위명여권을 사용했던 사실이 드러나 올 초 강제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한국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두려웠던 송씨는 현재 가족과도 연락을 끊은 채 숨어 지내고 있다.

서울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는 지난 19일부터 항의 표시로 무기한 단식 중이다. 총연합은 위명여권으로 추방됐거나 추방 대상인 사람이 1만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한다. 실제 법무부가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신원 불일치자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4260명이 신고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중국에선 돈 주고 여권 만드는 게 쉬워 진짜 신분을 여권으로 판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여권 범죄에 대처하려면 과거 이력에 따른 추방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총연합 관계자는 “이렇게 추방되는 이들은 중국동포라지만 이미 한국에 뿌리를 내려 사실상 한국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이라며 “10년 전 일을 문제삼아 내쫓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반박했다.

김유나 전수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