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K팝 이어… 이젠 출판 한류다!
입력 2013-05-23 17:40 수정 2013-05-23 18:27
도서출판 김영사는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의 교양 학습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우리나라 편’의 프랑스 수출을 겨냥해 7월 중 불어 번역본을 국내에 먼저 출간하기로 했다. 통상 책 수출은 해외 출판사에 판권(저작권)을 파는 형태다. 앞서 ‘우리나라 편’의 대만 일본 중국 수출이 그런 식이었다. 따라서 번역과 표지까지 국내사가 다 맡는 완성품 형태의 수출 방식은 이례적이다.
김영사 관계자는 23일 “이르면 내년에 수출할 경우 유통망만 현지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을 알고자 하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프랑스가 유럽 한류의 진원지라서 불어로 먼저 번역하게 됐다”고 했다. 점차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작업을 확대해 간다는 방침이다. 출판계 관계자는 “김영사의 이번 방식은 로열티 수입에 비해 훨씬 이익이 큰 구조”라며 “그만큼 판매에 자신이 있어 작심하고 세계시장에 팔아보겠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출판 한류가 소리 없이 거세다. 한류 열풍은 2000년대 들어 ‘대장금’ ‘겨울연가’ 등 드라마의 동남아 수출로 시작됐다. 근년에는 걸 그룹 ‘소녀시대’의 파리 공연(2011),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돌풍(2012)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런 한류 열풍을 업고 한국의 책들이 세계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은 동남아 중심이지만 구미 선진국으로 활로를 뚫어가는 모양새다. 성장세도 눈부시다.
◇출판 한류… 수치가 말해준다=김영사의 경우 2002년 2권으로 시작한 수출이 지난해 17권으로 급증했다. 시공사는 2008년 처음으로 수출 계약 6권을 따낸 뒤 지난해 31권으로 늘렸다. 올 들어서도 4월까지 14권의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인쇄서적·아동용 그림책 수출은 2004년 8732만 달러에서 지난해 1억1559만 달러(약 1286억원)로 늘었다. 국내 출판사들의 4개 주요 도서전(볼로냐·서울·베이징·프랑크푸르트) 참가 시 저작권 거래액 합계(추정치)는 2003년 531만 달러에서 지난해 2047만 달러(약 228억원)로 4배 정도 늘었다.
◇학습만화 동남아 시장 석권=주 시장은 아직 동남아다. 가장 인기 있는 분야는 아동학습만화. 학습만화 수출 물꼬를 튼 건 아이세움(미래엔의 아동출판 브랜드)의 ‘서바이벌 만화 시리즈’다.
2002년 대만에 첫 수출을 성사시켰던 출판 에이전시 캐럿코리아 백은영 대표는 “대만에 학습만화 시장이 전혀 없던 상태에서 서바이벌 만화 시리즈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며 “이것이 성공 사례로 인접국에 회자되면서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다른 나라 수출은 쉽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만화를 통해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데다 동남아 교육 환경이 우리와 비슷한 점이 성공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서바이벌 만화 시리즈는 2008년 일본에 이어 올 7월 미국까지 진출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후 학습만화의 동남아 진출은 예림당의 ‘와이(WHY?) 시리즈’, 김영사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등의 성공신화로 이어졌다. WHY? 시리즈는 아시아 국가는 물론 프랑스 불가리아와 일부 아랍어권 국가에까지 총 45국(12개 언어)에 수출됐다. 시공사도 만화 수출에 가세해 ‘시공 만화 디스커버리’ 등을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팔았다
◇‘코리안 드림’을 판다=또 다른 인기 분야는 코리안 드림 관련서다. 시공사의 주요 수출 서적 품목을 보면 무엇이 팔리는지 알 수 있다. ‘요요베베의 하루 10분 푸드팩’ ‘미친 몸매 프로젝트’ ‘오븐엔조이 홈베이킹’ ‘팅크 따라 강아지옷 만들기’ ‘아이 러브 스타일’ 등이 그것이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 여성의 메이크업, 몸매 가꾸기, 살림·인테리어를 따라 하려는 수요를 겨냥한 책들이 잘 팔리고 있는 것이다. 시공사 박지원 본부장은 “실용서의 경우 언어 장벽이 적어 수출하는데 이점이 있다”며 “특히 한국에서 요즘 북유럽 스타일이 인기를 끄는 것처럼 동남아에선 코리안 스타일이 뜨고 있다”고 했다.
자기 계발서도 의외로 잘 팔린다. 이 분야 동남아 수출의 원조는 남인숙 작가가 쓴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RHK). 20대 여자들이 직면한 사랑 학업 진로 결혼 등의 고민에 대해 직설적 화법으로 얘기하는 이 책은 2006년 중국 태국, 2007년 대만 베트남에 팔렸다. 한국 여성에 대한 선망이 인기 배경으로 분석된다.
자기 계발서의 인기는 최근 청춘서 전반으로 확산되는데,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중국 대만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권뿐 아니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브라질 등 유럽 중남미까지 10개국에 진출했다.
◇성장 배경과 과제=출판 에이전시들의 적극적 활동도 성공적인 해외 진출 토대가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987년 우리나라의 세계저작권조약(UCC) 가입을 계기로 1990년대 들어 에릭양, KCC, 임프리마 등 저작권 대행 출판 에이전시가 우후준순처럼 생겨났다.
캐럿코리아처럼 이제는 저작권 수입 대행보다 수출 대행에 따른 매출 비중이 높은 곳도 등장했다. 에릭양은 적극적인 시장 개척을 위해 중국에 지사를 운영 중이다. 한국출판인회의 홍영태 기획위원장은 “한국의 저작권 수출은 이미 동남아 시장을 석권해 일본과 비교하면 총량에서는 뒤져도 베스트셀러 분야에서는 앞서고 있다”며 “이를 발판 삼아 유럽 미국으로 적극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어떤 책이 인기 있나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잘 팔리면서 출판 한류를 선도하는 주요 책들을 소개한다. 학습만화에서는 한국식 교육에 대한 관심이, 미용·패션 책 분야 등에서는 ‘코리안 드림’을 간접 실현하고자 하는 현지인들이 열망이 읽힌다.
◇서바이벌 만화 시리즈(아이세움)=‘곤충세계에서 살아남기’ 등을 통해 과학상식을 알기 쉽게 접근하도록 했다. 원색 화보로 꾸며진 것도 학습만화가 전무하던 동남아 시장에 파고 든 요인이다. 일본 만화보다 강한 스토리텔링을 무기로 만화 수출 원조격인 일본에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먼나라 이웃나라(김영사)=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가 네덜란드 프랑스 등 11개국 정보를 만화로 엮었다. 특히 ‘우리나라 편’은 국내 부임하는 외교관들의 필독서. 아시아권 수출 도서는 대부분 선인세 외 추가 인세가 발생하는 경우가 없는데 이 시리즈는 꾸준히 추가 인세가 발생하고 있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RHK)=남인숙 작가가 직설적이고 친근한 목소리로 20대 여성들의 고민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동남아의 경우도 여성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데다 한국 여성에 대한 선망이 겹쳐 책의 수출 성공을 가져온 것으로 판단된다.
◇요요베베의 하루 10분 푸드팩(시공사)=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와 과일 등의 재료로 만드는 초간단 푸드팩 63가지를 담았다. 저자 김지영씨는 피부 커뮤니티 사이트 ‘요요베베닷컴’을 운영한다. 한국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한국의 피부 관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청춘들에 던지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 김 교수는 해외 인기 비결과 관련,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전 세계 20대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