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이라도 ‘일반인’ 조용필로 살 수 있다면…

입력 2013-05-23 17:40


스타가 되면 돈과 명예, 인기를 동시에 거머쥐게 된다. 사람들은 밤하늘에 뜬 별을 보듯 스타를 동경한다. 하지만 일상의 소박한 행복은 잃어버리는 게 스타의 삶이다. 가수 조용필(63) 역시 그러하다.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은 그는 수많은 별이 뜨고 진 가요계에서 언제나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

“하루만이라도 ‘일반인’ 조용필로 살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게 뭔가요?”

“마음껏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싶어요. (스타가 된 이후) 한 번도 못해봤으니까. 집과 일터만 오가는 삶을 살았죠. 그래서인지 가끔 외국에 나가면 사람들이 저를 못 알아보니 배낭 하나 메고 돌아 다녀요. 괜히 백화점 같은 데 가서 기웃거리기도 하고(웃음)….”

조용필을 만난 건 22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소속사 YPC프로덕션에서였다. 지난달 23일 그가 10년 만에 내놓은 19집 ‘헬로(Hello)’는 발매 한 달이 지난 현재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수록곡 ‘바운스(Bounce)’와 ‘헬로’는 각종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TV 가요 순위 프로그램 1위에도 올랐다. 음반은 매장에 공급되는 즉시 팔려나가는 품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헬로’ 판매량은 20만장이 넘는다. 소속사에 따르면 조용필마저도 지인들에게 선물할 ‘비매품’ 음반을 따로 제작할 여력이 안 돼 매장에서 구입해올 정도라고 한다.

-환갑을 넘긴 가수가 다시 인기를 끄는 건 그동안 거의 없었던 일이다.

“외국에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히트를 하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운과 시기, 본인의 실력. 사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히트는 힘들다. 시기도 좋았던 것 같다. 10년 만에 발표한 음반 아닌가. 그런 게 이슈가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어떤 점이 어필했다고 보나.

“나도 그 점은 의문이다. 하지만 현재 가요계에서 인기를 끄는 음악과는 차별화된 음악을 내놨다는 점은 분명하다. 리듬과 사운드, 장르가 다른 음반이었다.”

-10년 만에 발표한 신보였다. 복귀를 앞두고 가장 걱정했던 게 있다면.

“히트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차트 10위권에 잠깐 올라갔다 내려와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가 있지 않나(웃음). 요즘 주변에서 ‘이번 앨범 대박입니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쑥스러워 죽겠다. 어제도 사업하는 지인을 만났는데 ‘대박입니다’라고 말하더라. 그런 말 하지 말고 다른 얘기나 나누자고 했다.”

조용필의 새 음반이 관심을 끈 건 비단 음악이 훌륭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헬로’엔 지금껏 가요계 노장들 앨범에선 발견할 수 없던 파격이 있었다. 리듬과 사운드는 최신 팝 음악과 다르지 않았고 노랫말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운스’ 가사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그대가 돌아서면 두 눈이 마주칠까/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 들킬까봐 겁나….’

-과거엔 시적이고 철학적인 가사가 많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가사는 음악에 맞춰서 지어야 한다. 리듬과 멜로디, 노랫말이 갖는 비중이 비슷해야 한다. 내 입과 노랫말이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가령 ‘바운스’ 같은 음악에 시적인 가사를 붙여버리면 노랫말이 갖는 무게 때문에 음악이 튀질 못한다.”

-창법도 과거와는 달라진 느낌인데.

“노래는 조금 (감정이) 모자란 듯이 해야 한다. 노래하는 사람이 슬퍼해선 안 된다. 듣는 사람이 슬퍼야 한다. 가수가 먼저 울어버리면 안 된다. 나도 과거엔 우는 것처럼 노래했다. 그런 식으로 노래한 내 옛 노랠 다시 들어보면 닭살이 돋는다(웃음).”

-음악이 ‘젊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도대체 ‘젊은 음악’이 뭔지 묻고 싶다. 젊은 애들을 타깃으로 해서 만들면 젊은 음악인가? 난 이번 음반 만들면서 ‘젊은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명곡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명곡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게 곧 명곡이다.”

-음반 제작비로 엄청난 액수가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공연이든 음반이든 항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모두 ‘나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음향 기계들을 비롯해 마이크 하나까지 새로 구입했다.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다. 제작비를 특정해서 말해주긴 힘들다. ‘전작들보다 몇 배 더 들었다’고 이해해 달라.”

-음반 성공 이후 TV 광고 섭외가 많았다고 들었다.

“(1990년대 초반에) 더 이상 TV 출연은 안 하고 콘서트에만 힘을 쏟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CF에 출연하면 약속을 깨버리는 게 된다. CF를 찍으면 그 광고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TV에 나갈 거 아니냐. 약속을 깰 순 없다.”

-이른바 ‘뽕끼’가 느껴지는 과거의 조용필 노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음악은 이제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지금 만약 그런 곡을 발표하면 20년 뒤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나. ‘내가 20년 전에 40년 전 음악을 만들었구나.’ 내 음악이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조용필은 ‘가왕(歌王)’ 이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최고의 인기를 누려온 대중가수이지만, 동시에 뮤지션 사이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위치에 올라 있다. 그는 “음악은 내 삶이고 나의 전부”라고 말할 만큼 음악에만 매진해왔다. 집에서는 AFKN을 비롯한 음악 방송을 진종일 틀어놓고 음악만 듣는다고 했다. 아내였던 안진현씨는 2003년 심장병으로 별세했으며 자녀는 없다.

-하루에 연습을 얼마나 하는 건가.

“매일 연습실로 나와 최소한 1시간30분은 한다. 저음과 중음, 고음을 계속 가다듬는다. 노래를 더 잘하고 싶어서 하는 건 절대 아니다(웃음). 특히 고음이 떨어지면 노래가 힘을 잃기 때문에 터프하면서 맑은 고음을 낼 수 있도록 계속 연습한다. 그래서인지 30대 때보다 더 높은 음을 부를 수 있게 됐다. 30대엔 힘만 내세워서 노래했지만 이젠 힘을 모아서 부르는 법을 알게 됐으니까.”

-은퇴를 하게 된다면 언제쯤이 될까.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활동할 것이다. 그러다 듣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수준이 된다면, 그 직전에 그만둬야 하지 않겠나.”

-또 다른 사랑을 꿈꿔본 적은 없나.

“매일 음악이나 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활동 반경이) 아주 좁다. 만남이 없는데 인연이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내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현재 있다면 이 나이에 그걸 숨길 이유가 있겠나(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